하교 후의 보건실
학생들이 모두 하교한 어느 날의 오후.
보건실은 조용했고,
나는 자리에 앉아 학생 건강검사 일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출장 검진이 가능한지 병원에 문의하려고
수화기를 들기 위해 고개를 드는 순간-
"으악."
눈앞에 한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며,
나를 빤히 바라본 채로.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걸까.
나는 무의식적으로
상체를 뒤로 물러섰다.
처음 보는 아이였다.
아마 다섯 살이나 여섯 살쯤.
발에는 실내화가 아니라 흙 묻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무릎에는
딱 봐도 방금 넘어진 것 같은
꽤 깊어 보이는 찰과상이 나 있었다.
나는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조심히 상처를 닦으며 물었다.
"유치원생이니?"
아이는 대답 대신
입술만 달싹였다.
"이름이 뭐야?"
"음… 황보민… "
이름을 말하고는
아이 스스로도 확신이 없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할… 할아부지…
할아부지가 가라고 했어요."
"… 음?"
하교 후에도
집에서 다친 아이를 보건실로 보내는 경우는 종종 있다.
라면을 끓이다가 화상을 입어
바로 앞 학교 보건실로 뛰어 온다거나.
그래서 별다른 질문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보건 일지에 이름을 적었다.
'황보민'
하교 후 다쳐 보건실에 다시 온 아이겠거니.
다음 날,
문득 지나가던 유치원 선생님과 마주쳤다.
"혹시, 유치원에 황보민이라는 아이가 있나요?"
"황보민이요? 아뇨."
선생님은 의아한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런, 우리 학교에 황보민이라는 아이는 없다.
그렇다면 어제 그 아이는 누구였을까?
순간, 그날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테이프처럼 재생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보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학교 옆을 지나가다
꽈당 넘어졌을 것이다.
무릎이 까진 아이를 보며
할아버지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을지도 모른다.
병원에 가기엔 애매하고,
집으로 데려가기엔 걱정이 되고…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바로 옆 학교가 눈에 들어오고
익숙한 장소 하나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을 것이다.
학교. 그리고 보건실.
"옳지! 학교 양호실에서 치료받고 와라."
그 말 한마디에
아이는 운동화를 신은 채
얼떨떨한 표정으로
보건실까지 걸어왔을 것이다.
물론,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닌 아이가
보건실에 잠시 들렀다가 갔다.
이름 하나와 무릎의 상처,
그리고 조금 놀란 얼굴을 남긴 채로.
아,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구나.
보건실은.
학교 명부에는 없었지만,
그날만큼은 분명히 이 학교에 머물렀던 아이.
지금도 가끔 그 오후를 떠올리면
나는 아무 말 없이 미소 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