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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츠 Daltz Sep 20. 2024

직업은 가수인데, 잘하는 건 서류 업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잘하는 일들을 활용 중.

나는 찾아가는 공연 활동을 주로 하는 공연팀의 대표로 살아가고 있다. 한 번의 공연에 네다섯 명 정도의 출연진이 함께하는 작은 규모인데도 하나의 공연팀을 꾸려나가는 데는 참 다양한 역할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출연진 외의 인력을 고용하기에는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 공기관 예산을 사용하는 학교, 도서관, 지역 축제에서의 공연을 주로 하고 있다 니 공연료 최대한 합리적으로 제시해야 다. 그래서 나는 공연팀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모든 역할들을 기꺼이 직접 맡고 있다. 여느 초소규모 자영업자 분들과 마찬가지로.


가수, 진행자, 연주자, 작가, 작곡가, 음악감독, 미술·소품팀, 공연기획자, 매니저, 경리, 마케팅담당자, CS담당자, 서류담당자, 그 외에도 그때그때 필요한 모든 역할들. 하지만 그중에서 세상에 노출되는 건 가수이자 진행자, 그리고 간단한 연주자로서의 역할뿐이다. 그러니까 구구절절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의 직업은 보통 그렇게만 여겨질 거다. 마침 그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그 역할을 하고 싶어서 나머지 역할들을 감당해 내는 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감당해내고 있는 쪽의 역할들에 더욱 재능을 타고났다. 


각종 서류 작성과 세무 신고 업무는 정말 재미가 없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내가 가진 약간의 강박증과 완벽주의가 장점이 되는 분야다. 숫자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챙겨서 표로 정리하고 있자면 실시간으로 성격이 안 좋아지고 있는 것 같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내가 강박성향을 활용하며 쾌감까지 느끼는 사람이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게 되었다. 그래도 나의 호불호와는 관계없이, 이만하면 꽤나 준수한 업무 능력을 타고났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일인 가수나 진행자, 연주자로서치의 재능을 타고나지 다. 그다지 잘하지 못하는데도 본인은 흥겨워한다는 점이 유일한 재능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부족한 쪽의 재능을 후천적으로 잘 갈고닦아 보기로 했다. 꽤 괜찮게 타고난 운영자나 기획자, 창작자로서의 재능을 이용내가 노래하기에 적절한 무대들을 만들어.


누군가 가수로서 나를 섭외해 줄리는 없었으나, 나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 가릴만한 음악과 공연을 직접 만들어내고 유통도 하지난 10년 동안을 나는 무대 위에서 노래해왔다. 그러니까 나의 정체성은 ‘가수’나 ‘진행자’라기보다는 사실 ‘싱어송라이터’나 ‘크리에이터’ 가다.


그래서 '가수'라고 여겨지는 상황,  멋쩍다. 여기저기에서 레슨도 받아왔고 계속해서 연습도 해나가고 있지만, 결국 보컬로서의 기술적인 역량유려한 전공자들 만치 다듬어지진 못. 예체능은 타고난 재능이 크게 작용는 분야이기도 하니, 쩌면 나는 타고난 재능이  없는 편인 걸지도 모르겠다.


정석적인 기술을 발휘하는 대신에 나는 특유의 음색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노래해 왔다. 그렇게 부르기에 어울리는 곡을 직접 만들어서 부르거나, 내 스타일대로 재해석하기에 유리한 곡들을 부르거나, 나의 부족함을 가리면서. 이제까지 거쳐왔던 보컬 트레이너 선생님께서 면 기하실 이야기다. 그동안 배웠던 것들도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매우 열심히 용하고 있다는 변명을 른 덧붙여둔다.


감상자 입장일 때도 나는 흔히 말하는 '건강한 소리'를 가진 가수들보다는 자신이 만든 곡을 개성 있게 전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의 목소리에 더 끌려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도 그랬으니 지금 상황은 결국 마이너 취향의 인과응보겠다. 그래서 스로의 노래를 들어보마음에 드는 부분  있기는 다. 그러니까 무대에 설 수 있는 거다.


요즘에는 그나마 '싱어송라이터'라는 단어가 널리 알려져 있는 게 다행이라 여기면서 나는 그 뒤로 숨곤 한다. 그게 뛰어난 '보컬리스트'는 못된다는  돌려 말하라고 만들어진 단어는 아닐 텐데 싶어, 조금 비겁하다고는 생각하면서도. 같은 맥락으로, 무대 위에서 출연진을 소개할 때마다는 내가 작곡과 기획을 겸한다는 사실도 꼭 알곤 한다. 노래만으로는 이 공연 안에서 내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인정받기 어려울까 굳이 설명을 덧붙이 싶 거다.


그렇게 나의 노래를 얹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로, 내가 제작한 공연들에 대해 자부심이 다. 기획자로서의 나는 제법 냉철하여서, 보컬로서의 나에겐 맞춤형 조연의 역할만을 맡. 그리고 주연의 역할은 플레이어로서의 역량이 더 뛰어난 배우나 연주자에게 맡. 또 가끔 북콘서트를 할 때면 작가님들께서 주인공이 되어주시기도 다. 기적에 가깝게 훌륭한 배우나 연주자들, 연출님, 작가님들과 협업을 하게 되, 나는 성공한 덕후와도 같은 감개무량함으로 그들과 같은 무대에 서고 있다. 기대 이상으로 완성된 공연 속에서.


그렇게 프로페셔널한 출연진들과 함께하게 된 걸 보면 공연팀의 운영자이자 기획자, 창작로서의 내 역량은 제법 괜찮은 모양이라고 생각다.  행자, 스토리텔러로서의 역량이라면 이제 부끄럽지 않을 만큼다듬어 것 같아 무대 위에서도 한층 당당해졌다. 그러나 보컬로서의 역량에는 끝내 자신감을 갖기가 않다. 그래도 나는 공연과 연습을 거듭해 나가는 중이다. 무려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에 있어서 나의 얼마 안 되는 재능 중 하나, 아하는 일을 꾸준히 즐겁게 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공연 때면 관객 분들께서도 그 즐거움의 에너지에 동화되어 함께 즐거워해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주눅이 들어서 마음껏 즐거워하지 못하게 된다면 보컬로서의 얼마 되지 않는 장점 중 하나마저 사라지게 될 거다. 그렇게 내 멋대로의 논리 아래 정당성을 확보해 둔 이래로, 나는 족해도 마음껏 즐거워고 있다.


노래보다는 서류 업무에 더 재능을 여온 내가, 으로 무대 위에서 과연 어디까지 발전해 나갈 수 있지를 실험해 보는  꽤 흥미진진한 일다. 열심히 갈고닦아 나가다 보 언젠가는 보편적이지 않아서 더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질지도 모른다. 아니면 반대로, 그래도 좀 타고난 재능이 있는 쪽인 기획자나 창작자로서의 역량을 통해 우리 팀이 더욱 성장하면서 내 보컬로서의 역할 차츰 비중을 줄여야 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것 또한 감사할 일일 거다. 그런 상황이 되면 곡을 쓰고 노래하며 즐거워하는 건 개인적으로 하다가 또 그에 맞는 무대들이 생겼을 때 가끔씩 공연도 하고 그, 뭐. 매순간에 최선을 다해둔다면 어떤 미래가 온다 해도 미련 없이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을 다. 그러니까 일단 지금은, 연습을 하러 가야지.








* 이쯤 이야기했으면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은 내 노래가 궁금해지셨을 것 같다. 가장 최근에 발매했던 앨범을 링크해 둔다.

https://www.youtube.com/watch?v=bABXDBE1x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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