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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츠 Daltz Sep 11. 2024

덕업일치의 부끄러움

일방적인 덕질을, 돈 받고 해도 되나요?

나는 윤동주 시인님의 시를 좋아한다. 이 문장을 꺼내놓기가 부끄러워서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했을 만큼.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끄러움의 시인'인 그러면, 이런 부끄러움까지도 이해해 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좋아지고, 그래서 더 부끄러워진다.


나는 다소 강박적인 성향을 가지고 살아왔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고 싶었으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졌던 것은, 그런 성향 때문이었다. 물론 윤동주 시인님의 괴로움은 나와 같은 강박에서 기인하진 않았을 거였다. 아주 개인적인 성향에서 비롯된 나의 보잘것없는 괴로움을, 만인이 공감하는 그의 괴로움으로부터 위로받는 것이 그래서 부끄러웠다.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나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니까 위로를 받았던 거다. 이미 그렇게 되어본 누군가 자신이 걸어간 길을 다정하게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괴로움을 뒤로하고 펼쳐낸 아름다운 길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서시'를 처음 접한 뒤 한동안은 다시 들춰볼 수 없었다. 고통을 직시하는 것도 아름다움을 꿈꾸는 것도 너무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지극히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서시'를 펼쳤다. 그렇게 몇 번인가 보고 나니, 길지 않은 시라 곧 외워져버리고 말았다. 지나치게 익숙해지면 그 의미가 바래져 버리는 순간이 올까 봐 아쉽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든든해졌다. 신비롭게만 여겼던 보물섬의 지도가, 준비만 마치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게 머릿속에 새겨진 것 같았다.






이후 십 년도 더 흐른 뒤에 나는 그의 시를 가사로 하여 노래를 몇 곡 만들게 되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의 시는 내게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든 자극이 아니었다. 그의 문장들이 내 마음속에서 닳은 까닭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세상에 닳은 까닭이었는지. 나는 오히려 흐릿해진 지도를 복원해내는 것과도 같은 감각으로 곡을 다.


런데 곡을 만들고 부르는 과정에서, 흑백으로 바래져 있던 그의 시들엔 다시 색이 입혀졌다. 얼마나 아름다운 거였는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기억이 되살아 나니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더욱 커다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단순히 시에 음악을 더하는 작업까지만 했다면 그나마 귀엽게 넘겨줄 여지가 있었겠다. 주체하지 못하여 넘쳐흘러버린 팬심의 결과물이려니 하고. 그러나 나는 그로 인해 공연 기회를 얻으며 수익창출까지 하게 되었기 때문에, 크게 혼란스러워졌다.


저작권이 만료되었다는 사회적인 정당성 뒤에 숨어서 나는 그의 작품성과 명성에 편승하고 있는 거였다. 시대를 건너 전해질 정도의 그 예술성엔 한참 미치지 못할 나의 음악을 멋대로 더하여서. 이는 예술적으로 보아도 상업적으로 보아도 굉장히 한 모양새가 아닌가. 게다가 나는 작업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명작으로부터 마음껏 영감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그 아름다운 언어가 마치 내 것인 양 노래할 수 있다는 것도. 그래서 부끄러움 애써 밀어 넣었다. 그동안 시들을 묵혀두었던 저 깊은 곳 어딘가로.






학교에서 공연을 하다 보면 감수성 풍부한 친구들은 가끔 나의 '별 헤는 밤'을 듣고 울어주기도 했다. 하긴 초등학생이라면 그 시를 처음 접하는 경우도 있을 거였다. 나 역시 겪었던 그 충격적인 감동의 순간을 지켜보며, 나는 안도하였다. 내 공연으로 인해 시를 알게 되는 아이들이,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아이들이, 분명 있다. 또 도서관에서 공연을 할 때면 어른 관객들로부터도 반짝거리는 감수성을 나누어 받았다. 시 한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볼 일이 많지 않은 요즘이니, 시를 음미 시간만 주어져도 그 감동은 모두에게 새삼스러웠다.


그렇게 공연을 거듭해나가며 나는 덕질의 명분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내가 공연을 계속해나가는 가장 큰 동기는 언제나 나의 즐거움, 나의 욕망이었다. 그러나 시인님들의 작품을 내 멋대로 노래하는 공연큼은, 계속해나가 인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합리화가 꼭 필요했.



시를 노래하는 공연에서 가장 많이 불러온 '별 헤는 밤'을 올 겨울엔 음원으로도 발매 계획이다. 공연 때 관객 분들로부터, 음원으로도 듣고 싶다는 요청을 가장 많이 받았던 곡이다. 그 작업을 설레는 마음으로 진행하고 있는 주제에, 나는 아직도 혼자 있는 시간이면 때때로 저 깊은 곳의 부끄러움을 꺼내어 가만히 들여다본다. 염치를 아는 인간으로 남고 싶은 욕심도 있는 거다.


그러다가 어떤 날에는 '서시'로부터 부끄러움에 대한 위로를 구하기도 한다. 그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더욱 부끄러워면서 말이다. 렇게 나의 부끄러움을 관통하는 '서시'만큼은 앞으로도 절대 노래로 만 수 없으리라. 그러 '서시'는 언제까지나, 나만의 시간에 내가 마음을 기댈 수 있도록 그 자리를 지켜주겠지. 처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든든한 마음으로, 덕질을 영업 중이다. 다들 이 든든함을 한번 느껴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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