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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츠 Daltz May 24. 2023

장사를 하고 나니 인디밴드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자영업에는 통하는 구석이 있다.

 2014, 15년에 모인 멤버들은 밴드가 별 성과를 내지 못하며 무료 공연 무대를 전전하는 동안에도 묵묵히 쭉 함께해 주었다. 연습실 월세로 매월 25만 원을 내야 했으니 수입은커녕 매월 각자 8,9만 원의 지출까지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밴드 활동 때문에 다른 경제활동을 마음대로 할 수도 없었므로 그건 모두에게 꽤 큰돈이었을 거다.


 5년 동안 이용했던 지하연습실은 내겐 여름의 풍경으로 기억된다. 에어컨이 공용공간에만 있어서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합주를 하다가 시원한 바깥 소파에 나가서 다 같이 늘어지곤 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 대하여 혹시라도 멤버들이 현타를 느끼고 있을까 봐 나는 쉬는 중에도 슬쩍슬쩍 눈치를 보다. 어느 날에는 변명 같은 미래 계획을 늘어놓고, 어느 날에는 연습실 바로 앞에 있는 망원시장에 나가서 500원짜리 로케를 사 왔다. 기분을 전환하는 효과로는 결국 후자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소파에서 고로케를 다 먹은 뒤에 환기가 조금 덜 된 방으로 돌아가보면 아직도 체육시간 후의 고등학교 교실 같은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래도 연습과 활동을 계속해나가다 보니 소소하게나마 수입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회당 20 -40만 원 정도의 출연료가 지급되는 작은 무대들에서 공연을 했다. 보통은 지역 축제 기간 동안 길거리에서 진행는 버스킹 무대였다. 먼 지역이라면 출연료의 반이 경비로 나가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멤버가 모두 모인 뒤로 2년 정도가 흐른 2017년에는 그런 수입들을 모으면 월세 지출은 간신히 메꿀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밴드가 자리를 잡아나가는 동안 나는 온라인 유통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창작과 관련이 없는 경제활동에는 하루 최대 4시간까지만 쓰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먹고 산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데, 지금 돌이켜보면 참 오만한 각오로 사업에 임했던 것이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업무 특성상 매일의 근무시간이 같을 수는 없어서 어떤 날은 1,2시간을 또 다른 날은 5,6 시간을 일해야 했지만 평균을 내면 딱 주 5일 동안 하루 3,4시간 정도의 노동량이 발생되었다. 그러면서 장사가 잘될 때의 순익으로는 중소기업 급여 정도가 나왔 때문에 나는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음악활동을 병행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통할 상품을 찾아내는 것부터가 까다로웠다. 나는 해외 가격과 국내 가격의 차이가 큰 유명 브랜드의 제품들을 수입하여 판매하는 것으로 수익을 내곤 했다. 일단 한국에 생산 공장이 없는 브랜드의 상품이어야 법적으로 병행수입이 인정되었다. 또 해외배송비는 무게에 비례하여 비싸지기 때문에 되도록 중량이 가벼운 상품을 찾아내야 했다. 백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자본금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보니 단가가 높은 상품은 취급이 불가능했다. 상품을 다양하게 갖춰둘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 고객으로부터의 문의나 민원도 최대한 피하려니, 사람들이 큰 기대 없이 실용적으로 구매하는 생필품류가 좋았다. 그래서 나는 유명 브랜드의 것이라 약간은 비싼 대신 질이 좋은 생필품을 주로 유통하게 되었다.


 지만 그렇게 열심히 찾아낸 상품들을 유통하고 있자면, 겨우 한두 달 만에 같은 상품을 취급하는 경쟁업체가 생겨났다. 그리고 서너 달쯤이 지나고 나면 제각기 수입처를 뚫어낸 더 많은 판매자들이 등장하여 가격 경쟁을 벌이곤 했다. 같은 브랜드의 같은 상품이다 보니 최저가가 아니라면 주문은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하루에 십원씩 또는 백 원씩 가격을 낮추어갔다. 수익률이 100%였던 상품의 수익률이 5%가 될 때까지 팔아서 재고가 동나고 나면, 나는 바로 그 상품 유통을 멈췄다. 그리고 새로운 상품을 찾아 나섰다.

  

 그런 과정몇 차례 반복하고 나니 다른 판매자들이 쉽게 따라서 팔 수 없는 상품을 찾아내야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내는 것도 어려웠지만 제품 소개 이미지를 새로 작업해서 여러 사이트에 판매 페이지를 만들어 올리는 것도 시간과 노동력을 꽤 들여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온라인 유통업을 메인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수고도 기꺼이 감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밴드 활동을 위해 경제활동에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는 최대한 아끼자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수입과정이 복잡한 품목을 찾아보기로 했. 특정기관에서 검사를 받아야만 통관이 가능한 품목들은 나와 규모가 비슷한 작은 회사들에서는 보통 취급하지 않았다. 또 만약 그런 품목들을 취급한다 해도 관세사를 통해서 들여다. 그럼 유통과정에서 지출이 한번 더 생기게 되는 거였다. 나필요한 통관 업무를 직접 공부해서 별도의 지출이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전부터 상품 상세페이지 디자인과 박스 포장 등도 모두 직접 하여 다른 인건비 역시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해외 도매상까지 잘 만났으므로 다른 업체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 가격상품을 유통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작정을 하고 준비해서 유통을 시작했더니 일이 년이 지나도 경쟁사가 등장하지 않았다. 해당 브랜드의 한국 본사에서 공식 유통을 하고 있지 않은 제품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홍보도 잘 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질이 좋은 상품이었으므로 내가 판매하면서부터는 입소문을 타고 판매량도 점차 늘어갔다. 리하여 삼 년이 조금 넘었을 무렵에는 드디어 한국 본사에서 그 제품의 공식 유통을 시작했다.


 이제껏 쌓아온 판매이력과 상품평 덕분에 그래도 초반에는 본사보다 나의 판매 페이지가 더 상위에 노출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본사와의 경쟁이라면, 시간이 흐를수록 가격면에서도 신뢰도면에서도 무조건 내가 밀릴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 판매 페이지의 노출도가 아직 괜찮을 동안 재고를 모두 처분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참에 온라인 유통업을 아예 그만둘 생각이었다. 마침 밴드 활동을 통해서도 조금씩 수익이 나기 시작했으므로 밴드 활동에만 집중을 할 시점이 되었지 싶었다.






 그렇게 하나의 사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운영해 본 경험은 내게 큰 자산이 되었다. 우선 사업자 등록 후 각종 세무 처리에 능숙해진 것부터가 그랬다. 이후 밴드에서 사업자를 내게 되었을 때도 어렵지 않게 운영을 해나갈 수 있었다. 또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기획 업무, 통관이나 디자인처럼 특정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업무, 박스 포장이나 전화 응대와 같은 현장에서의 실무까지를 모두 혼자서 다 해내본 경험도 좋았다. 그렇게 혼자서 여러 가지 일을 해낼 수 있는 게 나의 장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 밴드에서의 내 역할 역시, 그때와 마찬가지로 멀티플레이어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대본을 쓰고, 작사와 작곡을 하고, 배경화면을 그리거나 PPT를 만들고, 무대에 서서 노래와 연주 한다. 연간 백 건 이상 공기관과의 계약서를 작성하 담당자분들과 연락도 주고받는다. 홍보를 위한 SNS 운영이나 세무 업무도 한다. 그렇게 여러 방면에서 직접 일하며 인건비를 절약하면 시장에합리적인 공연비를 제시할 수 있고 함께해 주는 사람들의 출연료도 후려치지 않을 수 있다. 온라인 유통업을 하면서 나는 소규모 사업을 가성비 좋게 운영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임을 깨달았고, 그밴드에도 잘 적용이 되었다.


 한편 나는 규모를 확장해 나가기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성향 자체가 소규모를 선호하는 사람이다 보니 규모를 더 확장하고 싶다는 생각은 애초에 잘 들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은 상황을 유지만 하려고 했다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세상 속에 결국 뒤로 밀려나게 된다는 걸 험했. 온라인 유통업을 했을 때는 어차피 잠시만 돈을 벌고 접겠다는 생각이었으므로, 어느 지점까지의 성장을 마친 뒤 도태가 되어가는 흐름을 그냥 지켜면서 받아들였다. 하지만 밴드는 평생 하고 싶은 일이다. 절대로 그렇게 되어선 안 됐다.


 다행히도 그것은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문제였다. 밴드에서의 나는 하고 싶은 게 넘쳐난다. 계속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기존의 콘텐츠를 수정해나가거나 한다. 그러니까 활동의 규모를 확장하지는 않더라도, 완성도에 깊이를 더해가는 방향성이 아마도 밴드에서의 확장이 될 것이다.






 온라인 유통업을 했던 시절에는 내가 먼저 찾아내어 유통을 시작한 상품을 다른 판매자들도 금방 따라서 판매할 수 있다는 게 참 별로였다. 물론 공연 업계에그런 사람들은 있다. 우리의 공연 중 하나가 많은 인기를 얻고 나면 그로부터 핵심 키워드를 가져다가 비슷한 공연을 만들어내는 단체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공연들은 대부분 대중으로부터의 호응을 크게 끌어내지 못했다. 공연에는 창작자와 출연자들의 개성과 내공이 담긴다. 누군가 어떤 공연을 따라 한다 해도 그 완성도와 재미까지 그대로 베끼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공연에 대하여, 마음껏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명 브랜드의 상품을 유통하면서는 상품에 대한 자부심을 크게 갖기도 어려웠다. 내가 만든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나만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원한다면 손글씨로 선물 메시지를 남겨준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소비자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운 요소였다. 구매를 결정할 만큼의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런 시절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길이 닿아있는 지금의 공연이 내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말하자면 지금의 공연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손을 대야만 하는 거기도 하다. 온라인 유통업을 하던 시절에 비해 업무량 훨씬 다. 총 소득은 늘어났을지 몰라도 시간 대비 소득을 계산해 보면 오히려 줄어들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행복하다.


 그래서 장사를 해본 경험에 대해서도 크게 감사한다. 예전에는 무작정 좋아하는 일을 즐긴는 감각만으로 활동을 해나갔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나가기 위해서 밴드를 어떻게 운영해나가야 할지 사업가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다. 장사를 하고 나니 인디밴드도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 온라인 유통업을 병행 중이었던 2018년 봄, 경주 벚꽃페스티벌에서 공연하였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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