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보호수가 건넨 삶에 대한 위로
일을 하다 보면, 마음이 착잡하거나 고민들이 머리를 채워 복잡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찾는 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 거대하게 서서 우직하게 사계절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어야 할 모습들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겨울의 앙상한 모습에서부터 봄에 푸릇하게 보이는 새순들, 여름의 풍성한 초록빛 잎이 가을에 도달하여 노랗게 물들었다가 그 모든 잎들을 대지에 선물하고 다시금 겨울. 이 나무는 이 순환을 수백년간 이어왔다.
단순한 삶의 반복임에도 불구하고, 이 오랜 시간을 이어온 큰 나무의 역사가 그 앞에 선 나를 겸허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 회사에서 5분쯤 걸어 이 나무가 있는 공간에 처음 들어서면 바로 나무의 전체적인 실루엣이 드러난다. 이 시점은 생각보다 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이 나무를 둘러싼 드높은 아파트들로 인해 왜소해 보이기도 하다. 나무의 진가는 가까이 다가가면서 드러난다. 다가갈수록 거대해지는 나무는 그 앞에 섰을 때 비로소 그 웅장함을 온전히 보여준다. 이 웅장함은 자체로 수백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이 나무 역시 주변의 여느 나무처럼 작았을 텐데, 수많은 풍파속에서 도태를 피해가며 매년 조금씩 키워 나가 저 자리에 이르렀을 것이고, 그 세월을 우리는 존경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큰 나무의 주변에 머물면, 그 거대한 자태 아래 작디작은 내 몸에 맴도는 마음들이 작디작음을 느끼게 된다. 충분히 고민하되, 휩쓸려가지 않을 정도의 작은 소용돌이. 큰 나무에 비추어 작은 소용돌이를 보다 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이 안정이 내가 힘들 때마다 이 나무를 찾는 원인이었다. 옛 선현들이 항상 마을마다 오래 살아온 나무에 신이 깃들어 있음을 상정하고 마음을 의탁했던 것은 이러한 위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의 발전이 위대해져, 어느새 위에서 내려 볼만한 건물들로 이 나무를 둘러 쌓았지만서도, 그 안에 존재하는 개인들은 결국 나무의 발치를 지나 세상으로 향한다. 아마도, 지금도 이 나무는 이 단지의 수호목으로 매번 반복되는 인간의 고뇌들을 어루만져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