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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우 May 22. 2024

친절한 청년

호의가 격하된 시대에서 마주한 소소한 행복

 내 지도 어플에는 수많은 회색 별표가 있다. 지인의 추천이든, 인터넷을 보다 흥미가 당긴 곳이든 한번쯤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든 음식점이나 카페를 체크해둔 표시이다. 이 회색 별은 어느 순간부터 살면서 모두 가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쌓여 항상 어느 지역에 일이 있을 때, 고민을 덜어주는 고마운 정보가 되곤 한다. 한 겨울 날, 일정 사이 시간이 뜬 가운데 애매하게 늦은 점심을 때워야하는 시점, 어김없이 이 회색 별표는 내게 한 닭백숙집을 추천해주었다.


 본디 칼국수집의 간판을 단 이 집은 노포 감성의 허름한 점포로, 이 일대에서 일하는 이들의 애환과 이야기가 서려있을 듯한 느낌이 들어 나의 선호를 짙게 자극해왔다. 하지만 내게도 전해질 정보의 유통성이라면 으레 그렇듯 늦은 식사시간임에도 이 곳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기다림을 썩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에 손쉽게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내게 점원은 혹시 합석을 해도 괜찮겠냐는 제안을 건내었다. 기껏해봐야 20분 남짓 밥을 먹는 터, 합석은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제안을 수락하자 그녀는 나를 안쪽 한 테이블로 인도했다. 테이블에는 이미 음식들이 가득했고, 같은 메뉴를 주문할 요량인 나는 뜻밖에 합석을 수락한 상대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순간 걱정이 피어올랐다.


 “안녕하세요!”


 걱정이 무색하게 내가 앉을 자리의 맞은편에서 복스럽게 닭백숙을 먹던 청년이 건넨 인사는 자체로 흥미로운 언어였다. 청년은 30대 초중반의 외모로 아마도 이 근방의 일을 하다 잠시 짬을 내어 점심을 먹으러 온 듯했다. 이 인사가 흥미로웠던 것은 낯선 이와의 부득이한 조우를 무시와 단절로 일관하는 것이 평화의 요령이 된 이 현대 사회에서 쉽사리 마주하기 어려운 호의 담긴 인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기껏해봐야 20분이다. 맛있는 음식을 입에 넣다보면 이 20분은 금방 지나가고, 타인과의 합석은 매장을 나서 10분도 되지 않아 잊혀질 터인즉, 30분만에 만료될 만남을 이 청년은 굳이 내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인사에 나의 머릿속은 순간 복잡해졌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나의 행동원리는 철저한 단절로 변수를 차단하여 조그마한 확률의 분쟁조차 허용치 않는 냉랭한 현대 사회의 어떤 것이었다. 그 전략은 이 청년의 인사로 산산히 조각났고, 그가 던진 수로 나는 응수해야 할 입장에 처했다. 이 예상밖의 상황에 나는 부랴부랴 가장 호의적인 어휘를 머릿속에서 찾아내어야 했고, 그 끝에…


 “안녕하세요. 자리를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도의 대답을 할 뿐이었다. 청년은 넉살좋게 아이구 아닙니다. 하면서 내게 물을 한잔 따라 건네는 수를 또 두었다. 아차! 이 다음수까지 떠올리기엔 나의 사회성이 썩 충만하지 않았다. 그는 호의의 수싸움에서 자꾸 나보다 한수를 앞서갔다. 대체 이 청년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선의의 수싸움이라면 영업의 달인이거나, 거친 아저씨들 사이에서 넉살좋게 살아남는 일이거나, 혹은 이 일대를 지배하는 업체의 후계자 수업을 받는 사장아들이 아닐까? 어쨌든 당장 응수할 호의를 찾지 못한 나는 멋쩍은 미소로 1차전에서 고마워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뜻밖의 계기로 기회는 도래했다. 이 청년도 우연의 흐름 앞에서는 무방비한 바, 실수로 젓가락 한짝을 떨어뜨린 것이었다. 그 타이밍은 절묘하게도 내가 백숙의 다리를 하나 뜯고 내려놓는 완벽한 시점이었고 나는 자연스러운 연속동작으로 수저통을 열어 젓가락 한짝을 건네었다. 그 동작은 군더더기 없이 이미 나는 당신이 떨어뜨릴 것을 알고 있었다는 느낌의 스무스한 연계였고, 1차전에서 물을 준 것을 통쾌하게 갚아준 셈이었다. 그는 좀전의 내가 그러했듯 겸연쩍게 감사함을 이야기했다. 이로서 스코어는 동일해졌다. 그 이후 다른 결정전의 기회는 없었고 식사를 마친 그는 일어날 준비를 했다. 하지만 내겐 한번의 수가 남아 있었다. 그가 첫 인사를 했으니 나는 그에게 마무리 인사를 하며 그의 좋은 하루를 축복해주며 자리를 마무리할 요량이었다. 호시탐탐 타이밍을 노리고 있는데, 아차! 그가 갑자기 훅 일어나더니 “좋은하루 되세요!”하는 것이 아닌가? 타이밍을 잃은 나는 궁색하게, 좋은 하루 되시라고 그의 말을 동어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 20분간 벌어진 호의의 대결에서 나는 시작과 끝 모두 완패한 셈이었다.


 홀로 남아 남은 백숙을, 그리고 흥미로운 패배를 뜯으며 짧은 시간 지나친 이 패배를 복기해보았다. 이것은 나의 패배일수밖에 없었다. 친절이 배인 청년과 머리로 친절을 기획하는 나는 시작점부터 정해진 결과일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20분의 대결 끝에 패배한 내 마음은 냉랭한 날씨와 대비되게 따뜻해져있었다. 아마도 이 청년의 호의는 그 자체로 인류애의 발로일 것이다. 그것은 내가 머리로 생각하던 것이 아니다. 가슴 깊이 배인 진짜 인류애이다. 안전한 단절과 불확실한 호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호의를 택할 용기. 피상적인 내 인류애와 대비되는 본질적 인류애. 그것은 이 훌륭한 식당의 백숙만큼 따뜻하고 담백한 것이었다.


 이 청년의 호의는 30분을 훌쩍넘어 계속해서 내게 남았다. 곱씹을 수록 나의 나약한 인류애를 되새기게 해줄 뿐이다. 그 계기에 문득 감사했다. 선의를 생각할때마다 떠오를 그는 내게 스승이었다. 그날의 유려한 백숙의 맛과 더불어 그의 호의는 오랫동안 내게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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