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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우 May 28. 2024

삼각백빈건널목

모든 것에는 가치가 있다.

 내가 매일 거치는 용산의 출퇴근길에는 백빈건널목과, 삼각백빈건널목이라는 두개의 철길 건널목이 있다. 삼각백빈건널목의 철길은 사용이 거의 없는 철길이다. 바로 옆에 있는 중앙선과 KTX가 다니는 백빈건널목은 철길이 번들번들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비해, 삼각백빈건널목은 철로가 녹이 슬려고 하고, 또 잡초들도 많이 자라나 와일드한 느낌이 물씬 풍기곤 한다.


 삶을 살아가다보면 언제나 주목받고 즐거운 시간들도 있는 반면, 때로는 세상에서의 나의 활용가치가 소진되었나 하는 상실감이 휘감는 시기들도 오기도 한다. 문득 이 건널목들을 지나다가 삼각백빈건널목에 이르러서 일종의 동질감을 느낀 적이 있다. 옆에 있는 철길은 오늘도 수십대의 열차가 지나가고, 활발히 차단기를 올렸다 내리고, 사람직원까지 배치되어서 관심을 가지는 데 비해, 이 삼각백빈건널목을 지나는 사람들은 조금의 주의도 기울이지 않고, 지나가는 그런 입장이 대신 서운해지기도 했다. 모든 것들은 주목받고 밝은 시기가 있는가 하면, 또 잊혀지는 시기가 있기도 하다. 한편으로 모든 것들이 쓰임새가 왕성하게끔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세상은 야속하게도, 삼각백빈건널목 바로 옆에 백빈건널목을 두었다. 그래서, 어쩌면 삼각백빈건널목은 더더욱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태양이 밝던 어느 날, 삼각백빈건널목을 지나며, 그 앞에서 화보촬영이 한창인 팀을 발견하게 되었다. 모델들은 가장 아름답고 멋진 모습을 하고, 그 순간을 카메라는 쉴새 없이 담아갔다. 아마도 그 촬영팀은 한산한 삼각백빈건널목이 훨씬 촬영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 모습들을 보며, 어쩌면 인정받지 못하고 잊혀진 존재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도, 활용가치, 평가라는 것은 지극히 가변적인 것이고, 또 고정된 관점에서 성립한다. 어떤 존재가 정해진(혹은 정해졌다고 여겨지는) 목적이 있다하더라도, 뜻밖에 다른 가능성으로 각광받는 사례들을 우리는 종종 찾아볼 수 있고, 어쩔때는 그런 것이 더 위대한 존재로 거듭나기도 한다. 비록 삼각백빈건널목은 열차의 통행이라는 본 목적에는 부실할 지 몰라도, 그 부실함은 누군가의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내는 기회로 작용했다. 어쩌면 그 옆의 백빈건널목은 쉴새없이 지나가는 철마의 육중함과 굉음에 지쳐 삼각백빈건널목을 보며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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