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 7일 차
토레스 델 리오~로그로뇨(≈19.93km)
여섯 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 아침은 에스테야에서 산 바나나와 숙소 자판기 커피로 해결했다. 독일 형아는 진즉에 먼저 떠나고, 나는 일곱 시 십 분쯤 길을 나섰다. 먼저 기다리고 계시던 브라질 분께서 슬그머니 뒤를 따라 나오셨다. 워크투게더? 잇츠오케이. 못다 한 이야기를 표정처럼 드문드문 나누며 당분간 같이 걸어 나갔다. 길은 온통 어두웠다. 미처 랜턴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가방을 벗어 꺼내기란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마침 앞서가는 헤드랜턴 두 분이 계셨다. 그들을 따라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분홍빛 토레스 델 리오(Tores del Rio)가 서서히 뒤로 저물어갔다.
어둠의 들판 사이로 길은 계속 이어진다. 처음엔 인사도 하고 말도 섞었는데, 앞선 두 분은 아주 빠르게 멀어졌다. 그 속도를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어느덧 먼 불빛, 마치 길을 인도하는 요정의 흔적처럼 느껴졌다. 느리긴 해도 날이 조금씩은 밝아오고 있었다. 이쯤이면 랜턴 없이도 겨우 걸을 만은 했다.
앞은 붉은 어스름, 뒤는 푸른 여명이었다. 7시 반이 되자 사물의 분간이 확실히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소원의 돌무덤을 지난다. 브라질 분의 속도에 맞추다 보니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걸음을 어려워하셔 쓰고 있던 등산스틱까지 빌려 드렸다. 여덟 시 반쯤 길이 완전히 밝아지고 나서는 그녀와 헤어졌다. 스틱을 다시 돌려받으려니 어쩐지 죄송스러웠다. 각자의 페이스에 맞춰 걷기로 하고, 우린 다음을 위한 인사를 나눴다. 아직 32km에 이르는 여정일 나바레테(Navarrete)의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걸음이 서둘러지긴 했다.
밭과 언덕을 지난다. 특히 자갈길이 많았다. 아침을 맞은 새들이 재잘거리며 노래했다. 오늘도 하늘은 파랬다. 8시 40분, 산을 넘긴 태양이 시선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언덕을 올라 도로로 나오자 앞서 걷는 사람들이 멀리 보였다. 먼발치에 웬 마을도 있었다. 어제부터 보인 저기 저 바위 산엔 벌써부터 눈이 쌓였다. 도로를 한동안 따라 걸었다. 오가는 차들은 거의 없었다. 앞서 본 마을의 이름은 Viana였다. 토레스 델 리오와 로그로뇨(Logroño) 사이의 유일한 마을이었다. 저기서 뭐라도 먹어야지 안 되겠다. 꼬르륵 무척이나 배가 고팠다.
9시 반 마을에 도착했다. 야외에 놓인 탁구대가 예뻐 어쩐지 탐이 났다. 동네가 작지는 않았다. 상대적일 뿐이지만, 이곳에는 현대적인 빌라들도 많이 보였다. 처음 만난 빵집으로 들어가 크로와상과 쿠키를 샀다. 골목의 벤치에 앉아 간단히 빵 식사를 하고 간다. 성곽을 거쳐 마을을 빠져나오자 예쁜 골목이 나왔다. 길가의 블루베리를 아무렇지 않게 따 먹는 순례자도 만났다. 주말을 맞아 산책을 즐기시는 분들이 많았다. 부에노스디아스. 주민분들께 아침 인사를 참 많이도 받았다.
지나온 마을에서 10시 종소리가 따라왔다. 소나무 숲을 지나 육교를 넘었다. 다리가 점점 피곤했다. 차곡차곡 쌓여온 피로가 무리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바레테까지는 못 가겠다. 그리 결론을 내렸다. 로그로뇨에 거의 다 와서야 목적지를 로그로뇨로 결정하게 됐다. 숙소는 아직 예약하지 않았다. 그래, 공립 알베르게로 한번 가보자.
도시에 다다르는 느낌이 있다. 큰 도로가 벌써부터 복잡했다. 길의 방향이 닿는 시선엔 넓게 퍼진 건물의 숲이 있었다. 아주 서서히 다가온다. 속도는 더디고, 풍경은 정지한 듯 보였다. 낙엽을 밟았다. 굴다리를 지난다. 점점 걷는 이들이 많아졌다. 11시 50분, 로그로뇨에 도착했다. 초입의 공원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찌 나는 나바레테까지 갈 욕심을 턱없이 부렸을까. 완전 방전이 됐다. 체력도 안되면서 왜 이리 자꾸 빨리 걸으려는지 모르겠다. 가방을 내려놓고 일단 쉬었다.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모두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다리로 강을 건너 알베르게로 향한다. 마라톤 대회로 골목골목이 분주한 분위기였다. 도착한 공립 알베르게(Albergue Municipal de Logroño)는 오픈이 1시였다. 앞마당에 신발을 벗고 앉아 한 시간 가까이를 그냥 기다렸다. 자판기의 산미구엘 캔맥주를 하나 뽑아 마셨다. 얼굴이 익은 순례자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1시에 문이 열리자 온 순서대로 체크인을 했다. 시설은 걱정보다 나쁘지 않았다.
샤워와 빨래를 마쳤는데도 두 시가 채 되지 않았다. 한숨을 돌린 후, 가벼운 동네 산책에 나섰다. 순례길에서 자주 보기 힘든 큰 도시다. 아무리 피곤해도 돌아다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찌뿌둥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Viana 마을을 지나면서부터 날씨가 조금씩 흐려졌었다. 여전히 햇빛이 났다 안 났다 했다. 오늘 밤엔 비가 온다는데 여러모로 걱정이 됐다.
일단은 제대로 된 밥을 좀 먹어야겠다. 한국 순례자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중국 뷔페집 이야기를 어제 저녁을 먹다 들었더랬다. 혼자라도 가보자 싶어 경로를 지정한 뒤 골목을 따라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신나는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귀를 따라 찾아가 보니 밴드의 흥겨운 음악에 맞춰 경쾌한 춤사위 한 판이 길 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홀린 듯 음악에 이끌려 소리로 흘러들었다. 절로 궁디가 씰룩씰룩 웃음이 잔뜩 넘쳐흘렀다. 그들의 행진을 따랐다. 발걸음이 박자에 맞춰 절로 스텝을 밟았다. 노래가 들리자 골목 곳곳에선 각자의 춤이 피어났다. 이런 분위기, 피로도 잊은 채 아! 모처럼 자유로웠다.
정신을 차려 그곳을 겨우 떠났다. 본분을 잊으면 안 됐다. 배가 정말 많이 고팠다. 걷다 보니 로그로뇨도 꽤 컸다. 규모로만 보면 팜플로나와 부르고스(Burgos)에 이어 프랑스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성당을 지나고, 동상을 지나고, 분수를 지나고, 로터리도 지난다. 중국 뷔페집은 생각보다 멀었다. 상호를 Wok999로 들었는데, 이름이 Premium Wok으로 바뀌어 있었다. 가격도 들었던 것에 비해 비쌌다. 하물며 애매한 시간에 간 터라 주말 저녁 비용으로 지불해야 했다. 무려 22.9유로. 카운터에 물어 정확한 금액을 확인한 뒤에도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 그래. 큰 맘을 먹었다. 이 허기를 어찌 참고 언제 또 다시 식당 수소문을 할까.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빈 배로 돌아가기도 싫었다.
로그로뇨의 핫한 패밀리 레스토랑쯤 되는 듯, 엄청난 사람들이 이 안에 있었다. 연신 생일 축하 노래가 흘러나왔다. 생긴 것에 비해 먹는 양이 의외로 적지만, 오늘만큼은 작정하고 먹기로 했다. 심지어 맥주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었다. 결국 다섯 접시나 먹었다. 맥주도 충분했다. 아이스크림으로 끝 입가심까지 완벽히 마무리. 거의 두 시간 동안의 만찬을 즐겼다. 어느 테이블에도 나처럼 혼자 앉은 사람은 없었다. 하아- 배가 아플 정도로 불렀다. 저녁을 따로 먹을 필요도 없겠다. 하루치 식사가 이 하나로 마무리됐다. 비쌌지만, 만족했다.
저녁이 되자 아니나 다를까 빗방울이 떨어졌다. 널어둔 빨래부터 일단 실내로 들였다. 지나가다 주방에서 한국말이 들리길래, 쭈뼛쭈뼛 건조기를 같이 쓰지 않겠냐고 여쭤보았다. 흔쾌한 동의. 익숙한 일인 양 4유로를 셋이서 나눠냈다.(1유로씩, 나머지 1유로는 가위바위보로 결정했다. 이겼다.) 덕분에 걱정 없이 옷이 바짝 말랐다.
오늘처럼 내일의 목적지도 일단 결정하지 않고 뒀다. 내일 일은 내일에게 맡기는 걸로. 남은 시간은 누워서 멀뚱히 시간을 보냈다. 일찍부터 잠이 쏟아졌다. 부디 비는 밤 동안 다 쏟아져버리길 바랐다.
2024.10.06.
걷기,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
7일 차(누적거리 161.42km)
오늘 하루 39,432보(25.9km)
*이 여정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마음에 닿았다면, 구독과 라이킷으로 따뜻한 발자국을 남겨 주세요. 큰 힘이 됩니다. 작가나 브런치북을 구독하시면 새 글 소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비수기 3편,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a」는 월/수/금 오전 8시마다 업로드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