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와 인사 그리고 정리

마무리, 쉼

by 달여리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아무래도 산티아고는 맑은 파랑으로 기억에 남을 듯했다.


9시가 다 돼서 일어났다. 커튼을 거둬 창문을 여니, 잊었던 빛이 와락 쏟아져 든다. 나도 모르게 파하 웃어 젖혔다. 더 이상 무거운 배낭을 메고 먼 거리를 걸어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것 참 섭섭하고도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느긋이 밥을 차려먹고 커피까지 내려마셨다. 핸드폰을 깨작거리다 별스런 쇼츠들에 멍하니 훑어빠졌다.

<산티아고의 더없이 파란 하늘>

마무리를 기해 미사에 한 번 더 참여하고 싶었다. 말끔한 기분을 위해 지난 산티아고에서 산 새 티셔츠를 입고 나섰다. 거의 모든 기념품 가게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유일하게 마음에 든 순례길 기념 티셔츠였다. 공기가 상쾌했다. 날씨에 더해 몸의 상태도 그랬다. 다리는 여전히 아팠지만, 이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내 선물로 같은 티셔츠 다른 색을 사고 싶어 그 기념품 가게에 먼저 들렀다. 입은 옷을 보고는 엄청나게 환대해 주셔 난데없이 어쩔 줄을 몰랐다. 순식간에 주변을 둘러싼 세 명의 직원분들, 멋쩍고 환하게 우린 하릴없이 막 웃었다. 마침 마음에 드는 색상이 있어 새로 하나 구입했다. 자수로 새겨진 글씨와 그림이 다시 봐도 마음에 들었다. 호치민에서 만나 커플로 입고 다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신이 났다.


12시 미사에 참여했다. 겨울로 접어드는 무렵이라 그런지, 확연히 사람이 적었다. 어딘가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알아듣지 못하는 긴 음성을 들으며, 그저 속으로 감사함을 아로새겼다. 종교와는 무관할 그 어떤 감동 같은 게 분명 있다. 아름다운 성가에 귀를 기울였다. 왜인지 자꾸만 향로에 눈길이 더 갔다. 큰돈은 아니지만 남은 동전 모두를 헌금으로 냈다. 이번엔 성체를 받으러 나가지 않았다. 이제 산티아고를 떠날 차례였다. 그러니 산티아고의 것을 몸에 담는 대신 무언가를 이곳에 내려놓고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그게 생각이 됐건 기억이 됐건, 형체 없는 어떤 것을 마음에서 툭 떼어 공중에 흩트렸다. 검은 배경에 내린 가느다란 빛줄기 위로 작은 먼지들의 폴폴 떠다녔다. 미사는 곧 끝이 났다.

<산티아고에서의 두 번째 미사>

묘실로 내려가 성아고보께 인사를 드린다. 성인 조각상 맨틀에 올라 이마를 대고 “무사히 다 걸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리 내어 말씀드렸다. 그땐 그게 끝인 줄 알고 지난번에 이미 다 했건만, 다시 한번 더 했다. 진짜 마지막이다. 순례길은 여기서 마무리된다. 그러니까 두 번째 마침표쯤이라 해두자.


아쉬움은 한 톨도 없었다. 오롯이 후련했다.


망설이다 한 식당에 들어 뽈보와 맥주 한 잔을 했다. 그리곤 숙소로 돌아와 한가로운 오후의 시간을 탈탈 털어 보냈다. 머리를 밀었다. 이른 샤워를 하고 오늘치 빨래도 했다. 등산 스틱을 완전히 접었고, 무릎 보호대를 비닐에 꽁꽁 싸매 넣었다. 모두 꺼낸 짐들을 하나씩 잘 정리해 배낭 안에 '여행 모드'로 새로이 테트리스했다. 저녁을 근사히 차려먹었다. 음악을 틀었고, 빠질 수 없는 깔리무초도 타먹었다. 밤이 된 후엔 어둠이 내린 산티아고 대성당에 잠시 다녀오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산티아고에서 모두 일곱 밤이나 보내게 됐다. 모든 거리가 어느새 익숙했다. 그 익숙함에 헤어짐을 고했다.

<오늘, 산티아고>

오늘의 온종일 bgm은 Benny Sings다.

가볍게 흥겹고 또 아주 달콤하다.

이 기분 이대로 하루를, 걸음을 온전히 매듭짓고 싶다.


다가올 여행과 구경을 준비했다.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의 기대가 된다. 내일 마드리드로 간다. 잘 있어 산티아고. 또 보자는 말은 쉽게 하지 않을게. 확실한 인사는 내일로 미루자. 잘 자,


웬만하면 오늘만큼은 내 꿈 꿔.



2024.11.28.

휴식,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오늘 하루 11,770보(8.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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