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짠 배드민턴
배드민턴은 재밌고 활기차고 웃기는 운동이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같은 반 친구들과 체육시간에 배드민턴을 치면서 즐거웠던 추억이 있다. 그때의 나는 아마도 체육을 싫어했는데, 어쩌면 배드민턴을 치는 동안엔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헬스를 그만두고 배드민턴을 시작했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퇴사해서 나처럼 시간이 여유로운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가 있어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국민센터의 배드민턴 레슨에 함께 등록했다.
첫 주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헬스를 할 때와는 달리 땀을 흘리는데도 재밌어서 웃을 수 있었다. 땀을 흘리면서 웃는 것은 내게는 아주 드문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힘겨웠지만 치고 나면 개운했고, 하루가 아직 많이 남아 알차게 사는 감각도 느꼈다. 선생님은 우리보다 8살 많은 여성분이셨고, 활기찬 톤으로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셨다. 몇몇 수강생들이 와서 우리의 신상을 캐묻고 좋은 채를 사라며 추천해 주었다. 그 정도의 신상조사와 오지랖은 세대차이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른들이 다 그렇지 뭐.
둘째 주부터는 더 많은 수강생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아무래도 나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눈에 띄는 수강생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우리에게 "몇 학년이야?"하고 물었고, 어떤 사람은 "대학교 방학 아직 안 끝났어요?"하고 물었고, 어떤 사람은 "애기 엄마야?"하고 물은 것으로 보아서, 우리의 나이는 표면적으로 17세~40세로 추정되는 듯하다. 대부분의 수강생 동료분들은, 특히 여성분들은 우리를 반가워하거나 귀여워했고, 먹을 것을 챙겨주시거나 격려의 말을 나누셨다. 반면 늙은 아저씨들은 조금 달랐다. 우리 나이를 듣고는 앞뒤 없이 갑자기 결혼하라며 우리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도 꺼내지 않는 결혼 이야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자기네 교회에 나오라고, 나와서 신랑감을 찾으라고 강권했다. 참고로 그들은 2인조 팀이었다. 2:2 복식 게임이었으나 이기기는 쉽지 않은 구성이었다.
그 다다음 날에는 배드민턴클럽의 회장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아저씨가 나와 친구가 게임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것이었다. "사람에게 공을 쳐야지."라던가. 그러더니 결국 우리에게 와서는 "배드민턴 잘 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내 채를 가져가서 시범을 보인다. 참고로 요청한 바 없다. 나는 "아니요. 재밌게 치려고 치는 건데요."라고 했으나 들린 것 같지는 않다. 우리에게 채가 안 좋다며 좋은 걸로 바꾸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배드민턴 전용화를 신어야 한다, 긴 바지를 입고 치면 안된다, 짧은 바지를 입고 쳐라... 류의 말을 슬리퍼 신은 채로 해주셨다. 급기야 우리의 채를 가져가서 시범인지 레슨인지 아무튼 뭔가를 보여주셨다. 아직 식견이 좁아서 그런 건지 배드민턴 회장 아저씨의 진가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장비에 대한 지적은 처음에는 조언으로 들을 수 있었으나 반복되니 초보자에 대한 배척으로 느껴지기도, 조언을 빙자한 일종의 가르치고 싶은 태도로 읽히기도 했다. 간혹 남자 어른들은(가끔은 우리보다 나이가 많지 않아도) 여자를 가르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곳의 아저씨 빌런들은 그들의 정석적인 표본이었다.
재등록 기간인 셋째 주가 돌아왔다. 친구와 나는 재등록을 고민했다. 배드민턴은 여전히 재밌는 운동이고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행운이라는 것을 알아서, 계속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빌런 아저씨들을 생각했다. 아저씨들은 우리에게 말 거는 것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정말 큰 소리 내서 싸울 기세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 이상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이상한 여자애가 되겠지. 안 해봐도 잘 알겠다. 평범한 억양으로 그만하라고 하는 말, 돈 없어서 장비 못 산다는 대답은 그들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모조리 보이지 않는 벽에 닿아 부서지는 듯했다. 이걸 그냥 견디고 재등록할까, 했던 생각은 빌런의 합동 공격으로 말끔히 사라졌다. 내가 내 돈 내고 즐거우려고 하는 취미생활인데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계속할 이유가 있을까? 배드민턴을 좋아하지만 그런 스트레스 요소까지 견딜 만큼 좋아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왠지 앞으로 차차 우리에게 밝혀지지 않은 모종의 빌런이 추가될 것만 같은 느낌도 왠지 있었다.
그러므로 배드민턴 레슨을 한 달 만에 그만두기로 했다. 좋은 선생님, 좋은 여성들을 만나서 헤어지는 게 너무도 아쉽지만 그 아저씨들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한 연대감을 가지기엔 아직 이르다. 나에게 맞는 운동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건강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꾸준히 할 운동이 필요한데, 이렇게 또 운동 하나를 접고 나니 그냥 운동 없이 건강하고 싶은 심보만 늘어간다. 운동 없이 건강할 수 있는 마법이 있다면 누구든 내게도 정보를 알려주길 간절히 요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