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될 내 여행에 안녕을 바라며
다니던 회사를 바로 그만둔 뒤, 여행을 준비하는 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내 인생의 가장 미친 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일이 나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미래의 방향성을 예측하고자 더욱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살아오던 내가 이런 목적도, 기한도 없는 여행을 떠나려 하고 있다니.
프랑스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하다 귀국한 지 일 년, 취직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았던 나.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하고, 남들과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길 바라고, 특별히 튀지 않는 삶에 익숙해질 것을 조금은 바라며 들어왔던 한국이지만, 어떤 이유로든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이렇게 또 긴 여행을 떠나는구나 라는 약간 씁쓸한 생각이 조금은 들었다.
그래도 숨통이 트이는 점이 하나 있다면, 나는 다니던 직장 외에도 조그만 개인 사업체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 생활 해외에서 거주하며 가진 경험을 기반해 온라인 쇼핑몰을 하나 운영하고 있었고, 나름의 수익이 괜찮은 데다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건 꽤나 큰 메리트였다. 귀국 후 정착이라는 압박감에 치여 직장과 쇼핑몰을 겸하며 개인 시간이라곤 없이 치열하게 살아왔고, 내 삶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한 채로 일에만 휘둘리던 모습은 결국 이별의 사유 중 하나가 되었기도 하지만, 어쨌든 지금의 상황에 내 사업체의 존재는 내 여행을 서포트해 줄 수 있는 돌파구가 될 것임은 분명했다.
첫 번째 여행지로 정한 곳은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왜 그곳이냐고 묻는다면, 그 선택에는 아무 기준도 없었다. 그저 지치고 힘든 나날이 이어지는 일상을 벗어나,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 없고 가본 적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을 뿐이다. 그중 내가 별 다른 준비 없이도 당장 직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행지가 바로 이스탄불이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계획성 있는 삶을 추구하는 편이고, 이전의 여행들도 큰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나름의 계획을 빡빡하게 세우고 가는 편이었다. 다만 이번엔 지금까지와는 다른 여행 방식을 가져보기로 했는데, 목적도 계획도 없는 채로 발 닿는 곳을 따라 정처 없이 움직여보는 것. 나도 아직 모르는 내 앞으로의 일들에 생길 변수들에, 그냥 몸을 맡기고 흘러가보기로 했다. 튀르키예는 첫 여행지인만큼 이스탄불과, 열기구로 유명한 카파도키아 정도는 가볼까 하는 게 이번 여행 전에 세운 유일한 계획이었다.
다만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후, 실제로 떠나기까지 나의 시간은 그저 하루하루 버려지고 있었다. 진지하게 미래를 그렸던 연인을 잃은 상실감은 모든 의욕을 앗아갔고,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던 중 우연히 시청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하지만 우연히 접한 이 영화로, 떠나기 전 얼마나 많은 위안과 용기를 얻었는지.
극 중에서, 관계에 대한 상실을 가진 여자주인공은 자신이 엮여있던 많은 것을 과감히 끊어버리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돌아보기 위하여 1년간의 여행을 떠난다. 그중 4개월은 이탈리아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 잘 먹고 잘 쉬며 지쳤던 몸과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이후의 4개월은 인도로 넘어가 명상과 기도를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스스로를 용서하고 보듬어주는 시간을 가진다. 그 후 마지막 4개월은 발리로 넘어가, 새롭게 찾아온 인연을 마주하며 두렵지만 그간의 과정을 통해 용기를 내 새로운 관계를 이어나가게 된다.
정말 나를 위한 영화가 아닌가 싶을 만큼 여행 전에 이 영화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비록 나는 이스탄불을 제외하곤 어디에 있을지, 어떤 곳에 있을지 하나도 정해두진 않았지만, 영화의 주인공처럼 잘 먹고 잘 쉬며, 홀로 떠나는 이 여행에서 기도와 명상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과정을 갖고 싶은 건 분명했다.
그렇다고 내 여행이 그 영화처럼 똑같이 흘러갈 필요도 없다. 마지막 하나, 아직 새로운 사랑을 꿈꾸거나 하기엔 내가 너무 지쳐있기에 앞으로 내가 적어 내려갈 내 영화의 타이틀은 조금 수정하기로 했다.
'먹고, 기도하고, 이별하라'
나는 이번 여행에서 잘 먹고, 잘 쉬며, 잘 이별하고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