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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잘 꿰인 첫 단추

그놈의 카이막이 뭐길래

by 담아

A와 함께 다니기로 한 이틀간의 이스탄불 동행이 시작되는 날,


아무래도 시차 적응이 덜 됐는지 오전 6시쯤 피곤함이 남아있는 상태로 눈이 떠졌다. 새벽에 갑자기 들린 큰 소리로 인해 잠을 설쳤는데, 알고 보니 무슬림의 기도 시간이라더라.. 아무리 숙소가 탁심 광장 근처라고는 하지만 무슨 기도를 새벽 5시부터 온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게 하나 싶었다. 이것도 문화 차이인 거겠지?




아침을 일찍 시작한 만큼 간단한 커피 한잔 한 뒤, 늦은 오전에 A와 만나 아야소피아, 술탄 아흐멧 모스크, 톱카프 궁전등 이스탄불의 주요 관광지들을 둘러보았다. 어제는 늦은 저녁에 도착해 제대로 도시를 둘러볼 새가 없었지만, 오늘은 완벽한 날씨와 더불어 내가 가진 고민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관광지 특유의 느긋함이 나를 한층 더 기분 좋게 만들었다. 게다가 A는 여행을 대하는 방식이나 사진 취향등이 나름 잘 맞아 나의 첫 여행지를 혼자 다니지 않기로 한 건 참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이 들 만큼 함께 있다는 즐거움이 크게 다가왔다.


활기 넘치면서도 왠지 모르게 평안한 이곳!


이전의 나였으면 정말 무심하게 지나쳤을 부분이었겠지만, 이번에는 사소한 것들에도 꽤나 자주 지갑을 열었다. 그냥 한 번쯤 그래보고 싶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였다. 이곳에 있는 여러 종류의 길거리 음식, 군옥수수를 튀르키예의 길거리에서 처음 사 먹어봤는데 여행 도중의 허기를 적당히 달래기에 나름 나쁘지 않더라. 석류주스는 약간 떫긴 했지만 더운 날씨의 갈증을 풀 수 있었고, 슬러시는 그냥 그랬지만 새로운 맛과 시도였다.


각 여행지마다 기념품도 모아 볼 예정이었다. 유럽에서 거의 20대의 대부분의 삶을 보내며 이미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한 번도 기념할만한 무언가를 구매해 본 적은 없는데, 이것 역시 내겐 새로운 도전이라면 도전이겠지. 나나 A 역시 짐을 더 늘릴 수 없는 장기 배낭 여행자라서 허락된 건 몇 장의 엽서뿐이긴 했으나, 이 순간의 추억을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좋았다. 비록 누군가가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조그만 것들이라도 지금까지 내 모습과 멀었던 소소한 것들에 대한 변화를 가져보고 싶은 게 이번 내 여행의 목표 중 하나이기도 했다.




반나절동안 돌아다닌 이스탄불에서 느낀 점이라면 길거리에 고양이와 개가 정말 많다는 것인데, 정부 차원에서 관리하여 주인이 없더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데다 이곳의 주민들 모두 동물을 예뻐하여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보기 좋은 풍경이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일도 있었는데, 모든 일정을 소화한 후 늦은 점심을 먹으러 방문한 유명한 케밥 집에 방문했을 때였다.


야외 테이블에 앉은 우리의 바로 옆엔 나만한 크기의 떠돌이 개가 누워서 자고 있었고, 테이블 밑에는 작은 고양이가 한 마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를, A는 개를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는 만큼 동물에 대한 거부감 없이 수다를 떨며 주문한 음식을 기다렸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고양이는 사랑이야


하지만 식사가 나오자마자 고양이가 내 무릎에 올라와서 음식을 탐내느라 제지시키는 동안 내 바지는 매우 더러워졌고, 식사가 10분 정도 지속되었을 때쯤 그 큰 개가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고 몸을 털어 우리의 음식에 모든 털이 다 날려 결국 우리 둘 모두 비위가 상해 식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귀엽긴 하지만 이런 해프닝을 바란 건 아니었어...




하지만 괜찮아, 우리한테는 다음 행선지가 있으니깐! 바로 튀르키예의 전통 음식인 카이막을 판매하고 있는 보리스 인 예리라는 유명한 식당에 방문했다. A 한테 듣기론 방송에도 나왔던 곳이라 보통은 한국인들이 웨이팅도 하는 집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갔을 땐 늦은 오후라 그런지 별다른 대기 없이 바로 입장이 가능했다.


사실 카이막이라는 이름만 들어봤을 뿐 정확히 어떤 맛인지도 모르는 데다 튀르키예의 전통 음식이라는 것도 잊고 살만큼 내 인생에서 관심조차 없었지만, 최근에 별로 유쾌하지만은 않은 경로로 접한 적이 있었다. 이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마 정리하지 못했던 전 연인의 sns였는데, 누군가와 카이막을 먹으러 간 사진을 마주하고 어찌나 질투가 났던지.. 나만의 여행 도중에도 이런 식으로 갑작스레 떠오르는 그녀와의 접점은 그저 체념하고 아파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놈의 카이막이 대체 뭐라고


사진으로만 보았을 땐 약간 요거트 같은 음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빵에 발라서 먹는 거였더라. 평소에는 듣기도 힘들었던 그 음식의 실물을 기어코 마주하게 되었구나. 그날의 기억이 더 씁쓸하게 다가왔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본고장에서 처음 먹어보는 카이막은 내게 있어 그저 그랬다.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큰 감상이 필요하지 않은 음식이었다.




그 후엔 마침 일몰 시간이 다가오는 데다 근처에 바닷가도 있어 A와 함께 부랴부랴 이동했다. 여행객이 방문할 법한 곳은 아닌 작은 규모의 산책길이었지만 하늘색은 주홍빛으로 물들고 있었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살랑이는 바닷바람과 함께 예쁜 풍경을 바라보며 적당히 생각을 비우기에 좋았다. A와 함께 바다를 보며 서로의 노래 취향도 공유하고, 내가 어떤 마음으로 여행을 왔는지에 대한 얘기도 조금은 해주었다. 그는 나를 응원한다고 얘기해 주더라.


오늘 하루 내내 A에게 고마운 게 많은 여행이었다. 만약 혼자 다녔으면 그저 유명한 관광지나 몇 개 둘러보고 뚜렷한 계획 없이 도심을 걸어 다니다 하루가 갔을 테지만, 그가 사전에 유명한 식당이라거나 동선 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와 주었기에 여러 새로운 경험들을 접할 수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같이 여행을 하니 즐거웠다. 고맙게도 A 역시 하루가 즐거웠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해가 저물어 깜깜해질 때까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하다가, 택시를 타고 함께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이 와중에 작은 사건이라면, 이스탄불은 택시 비용 사기가 많다고 들었는데 설마 내가 당하겠어?라고 생각한 게 무색하게 바로 당해버렸다. 무려 0을 하나 더 붙여서 20분에 10만 원이 청구되더라.. 다행히 이곳의 택시 호출 앱인 우버를 통해 불렀던 만큼 그곳을 통해 바로 신고 접수해서 문제없이 처리된 만큼 이런 일이 크게 기분 나쁘게 다가오진 않았다. 아직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가? 마음에 여유가 돌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여행의 첫 날인만큼 아직까진 전 연인의 생각이 불쑥불쑥 떠올라 기분이 가라앉을 때도 있었지만, 맛있는 음식과 새로운 것들로 넘쳐나는 이 도시, 함께 여행하는 A의 존재가 그 무거운 감정들을 빠르게 휘발시켜 즐거움과 행복이 더 크게 남았다. 남은 내일 역시 이렇게 좋을 것이라는 은근한 기대감과 함께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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