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러다가 아파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나에게 속한 나의 일부인데, 제멋대로 굴다 못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서 일이라도 할라치면, 10㎏ 쌀가마니가 양쪽 어깨에 올려진 느낌이랄까. 목은 빳빳해지고, 등줄기는 한 대 맞은 것처럼 뻐근했다. 그동안 좀 바빠서 몸이 보내는 신호를 좀 무시했더니, 더는 참지 못하고 잔뜩 성질을 부리는 모양이다. 알았다, 알았어. 나도 이제는 아파서 죽을 것 같다. 어떻게든 살 방법을 찾아보자.
3주 전쯤. 2관왕을 달성했다. 영광스럽다 못해 마음이 벅찼다. 솔직히, 망연자실했다. 이런 건 타이틀 하나도 피하고 싶은데 말이다. 요즘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다. 요정도 증상이야 진통제면 금방 가라앉으니까, 늘 그렇듯 가방에 있던 타이레놀 먼저 꺼내 들었다.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는데, 그게 두통을 불러왔다고 생각했다. 뭐 아니면 빈혈 정도? 그런데 진통제를 먹어도 차도가 없는 거다. 일상생활도 어렵게 되자 제 발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나의 예상을 가뿐하게 무시하고 다른 진단을 내렸다. ‘목.디.스.크’. 허리디스크 하나도 데리고 살기 버거운데, 이제 목까지 모시고 살아야 한다고? 이런 2관왕 타이틀이라면, 사양하고 싶었다.
도수 치료에 견인 치료, 물리 치료까지 끝내고 약국에 들러 약을 받았다. 시계를 봤더니, 두 시간을 병원에서만 보냈더라. 급한 마음에 택시를 잡아타고 회사로 향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시간에 쫓기면서까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게 더 서러웠다. 이래서 병원 가는 걸 미뤘던 거다. 핑계 같지만, 정말로 그랬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두세 번 치료를 받았더니 그래도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나 오래, 자주 병원에 가야 나아질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이야 통증은 줄겠지만, 치료에만 의지하는 게 지속 가능한 방법이 될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쪼개서 운동하는 친구가 있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고향 친구인데, 이제는 동네 친구가 됐다. 가끔 아이를 재우고 친구 집에서 와인을 마신다. 그 시간이 어찌나 꿀맛 같은지 모른다. 친구는 전날 야근을 해서 피곤한데도 어떻게든 일어나 운동하러 간다. 저녁 약속이 있는 다음날도 마찬가지. 땀을 흘려야 전날 마신 술이 빠져나간단다. 그런 친구에게 ‘넌 참 대단해’ ‘아니, 그렇게 힘든데 어떻게 운동을 가?’라고 말하면 ‘나는 결혼도 안 했고, 챙길 아이도 없잖아. 네가 시간이 없는 게 당연한 거야’라고 말해준다. 그 말이 참 묘하게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일하고 육아하느라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 열에 여섯은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말하니까. 시간은 만드는 거라면서 말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감정이 상할 때가 잦다. 나도 다 알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는 걸 어쩌란 말인가.
친구의 잔소리는 조금 달랐다. 운동하고 싶어도 선뜻 시작하지 못하는 마음을 먼저 헤아려줬다. 이제 운동하지 않으면 체력이 버텨내지 못한다는 친구의 잔소리가 마냥 듣기 싫지만은 않았다. 얼마 전 디스크 2관왕이 됐다니까, 작심한 듯 말했다. 같이 운동하자고. 일단 시작하고 나면 어떻게든 하게 된다면서.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저녁 10시까지 야근을 하다가도 꼭 헬스장에 들렀다. 손도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피곤했지만, 땀을 흘려야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것 같았으니까. 복잡했던 생각들이 땀과 함께 배출되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집에 가면 쓰러지듯 잠을 청하고 다음 날이면 아무렇지 않게 또 출근했다. 이어지는 야근에 술자리도 잦았다. 스트레스는 오죽했을까. 그런데 그걸 운동하면서 버텨냈더라. 마음이 힘들 때면 더욱 격렬하게 운동에 매달렸더라.
그래. 병원 다니느라 시간에 쫓기느니, 차라리 운동할 시간을 만들자. 일주일에 한 번, 딱 한 시간만 내보자. 의지가 꺾일 때 손을 잡고 이끌어줄 친구도 있겠다, 한 번 해보자 싶었다. 거창한 목표는 필요 없었다. 그냥, 살고 싶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일이고, 육아고, 다 내던져버리고 몸져누워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몇 년 만에 살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