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욕이 웬 말이니

몹쓸 체력을 탓해야지

by 김명교

4년 만에 운동복을 입었다. 쫙쫙 늘어나서 어떤 체형이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게 운동 레깅스의 미덕이라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몇 년 전에는 착용감이 좋아서 크게 만족했던 제품이었다. 편하게 입던 옷이 불편해질 정도로 내 몸이 운동을 멀리했다는 증거다. 착용과 동시에 다시 사야 하는 건가, 고민했다. 자업자득이지.


아이를 낳고 뒤틀린 체형을 교정하기 위해 기구 필라테스를 배운 적 있다. 기구 필라테스는 말 그대로 몇 가지 기구를 활용해서 하는 운동이다. 전쟁 중에 포로들의 운동과 재활 치료를 위해 침대와 매트리스 등 간단한 기구로 운동할 수 있게 고안됐다고 한다. 대표적인 운동기구는 ‘리포머’다. 레일 위에 있는 ‘캐리’라는 지지대를 움직이면서 운동할 수 있다. 지지대는 몇 개의 스프링과 연결돼 있고, 탄성이 센 스프링을 연결하면 운동 강도가 세진다. 지지대 위에 눕거나 엎드리거나 앉는 등 다양한 자세로 스프링을 밀고 당기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체력을 기를 수 있다.


그때도 나를 운동센터로 이끈 건 ‘위기감’이었다. 복직 날짜를 받아두고, 이 체력으로는 도저히 출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허벅지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증상(나중에 허리디스크 전조 증상이라는 걸 알았다)에 시큰거리는 손목, 안으로 말린 어깨까지. 아이를 기른다는 건 엄마의 정신과 체력을 갈아 넣는다는 일이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어찌 됐든, 일주일에 두 번,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기구 필라테스 수업을 들었다. 복직 때문에 딱 석 달밖에 못 했는데도 크게 효과를 봤다. 휘청거리던 몸에 힘이 붙더니, 어깨 통증도 조금 줄었다. 기대하지 않던 체중 감소 효과까지 있었으니, 기구 필라테스에 대한 만족도는 높을 수밖에. 그게 딱 4년 전 겨울이었다.


친구가 추천한 운동도 기구 필라테스였다. 무조건 등록하라면서 미리 상담 예약까지 잡아두는 치밀함(?)을 보였다. 일단 갔다. 황금 같은 토요일 오전 시간을 나 때문에 흘려보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나. 꾸준하게만 오면 낫도록 도와주겠다는 센터장의 자신감 넘치는 약속에 장장 10개월간 쓸 수 있는 회원권을 결제했다.


첫 수업 날. 호기롭게 그룹 수업에 들어갔다. 한때는 헬스 트레이너한테 운동 자세가 좋다는 말도 들었었고, 3개월간의 경험치도 있는 나니까, 얼마든지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입고 있던 운동복이 불편한 것만 빼면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수업 시작 10분 만에 ‘괜히 등록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리포머를 컨트롤할 수가 없는 거다. 스프링을 연결한 운동기구라서 흔들림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어야 운동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기본적인 동작조차 따라 하지 못해서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어찌나 우스꽝스럽던지. 마음 같아서는 그만하고 싶었다. 그에 비해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능숙하게 수업을 따라갔다. 갑자기 승부욕이 동해 쫓아가다, 뒤처지기를 여러 번. 여전히 몸이 제멋대로 굴자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못 따라가는 나를 채찍질하는 강사의 호령에 내 몸은 작아지고 또 작아지다 아예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야심 차게 운동을 시작한 첫날, 이러다가 운동 자체를 포기해버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떻게 그만둔다고 말하지? 하루 만에 그만둔다고 하면 친구 체면이 영 말이 아니겠지? 그럼 환불은 어떻게 받지? 머릿속은 그만둘 방법을 고민하느라 복잡했고, 집중력은 아예 사라졌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이게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의기소침하게 만드나 싶었다. 그러다 4년 동안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걷기밖에 한 게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인정해야 했다.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닥 치는 체력을 어떻게든 끌어올리고 싶었다. 체력이 올라가면 몸 상태도 나아질 테니까.



일단 후퇴다. 그룹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 때까지 일대일 수업을 받기로 결정했다. (수강료는 다섯 배지만….) 나를 위한 워밍업이자 배려다. 건강해질 나를 위한 투자다. 고작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는 걸 목표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어떻게든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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