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교 Dec 31. 2021

꽃에도 얼굴이 있다

"에이, 말도 안 돼. 꽃에 얼굴이 있다는 게 말이 돼?"


꽃꽂이하는 엄마 곁에 서서 종알종알 떠드는 걸 좋아했다. 비닐하우스 형태인 엄마의 꽃집은 온실과 다름없어서, 여름이면 눈꺼풀을 움직이고 숨만 쉬어도 온몸의 땀구멍이 죄다 열린 듯했고, 겨울이면 옛날식 연탄난로 없이는 손가락 하나 까딱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날에는 누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가셨을 테지만, 괜히 일하는 엄마 곁에 다가가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살피곤 했다.


가끔, 그때 엄마가 해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엄마는 꽃을 다루는 데 굉장히 냉정했다. 내가 보기엔 아직 생생하기만 한데, 그 정도면 팔아도 될 것 같은데, 엄마는 가차 없었다. 헐값으로도 팔지 않았다. 그렇게 팔지 못한 꽃만 모아도... 꽤 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꽃집에서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품질 좋은 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비싸도 좋은 꽃, 성에 차지 않으면 들이지조차 않았다. 누가 알아주나 했지만, 그게 결국 꽃집의 평판이 됐다.


그렇게 엄마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꽃은 엄마 손에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엄마는 한 송이 한 송이 들어 올려 요리조리 살핀 후에 제 자리를 찾아줬다. 손에 잡히는 대로 툭툭 꽂으면 될 걸, 왜 한참을 살피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고생스러운 길만 고집하는 엄마가 마뜩잖아서 한마디 던졌다. 그런 내 마음을 엄마가 몰랐을 리 없다.


"꽃에도 얼굴이 있어. 이리 보고 저리 보다 보면, 이 꽃의 얼굴을 찾을 수 있지. 꽃꽂이할 때 엄마는 꽃의 얼굴이 가장 빛날 수 있는 자리가 어딜까 고민해. 꽃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게 엄마가 할 일이니까. 이것 봐. 여기에 꽂을 때랑 저기에 꽂을 때 느낌이 완전히 다르지?"


엄마가 꽃을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너무 좋아한 나머지 꽃이라는 존재에 몰두해서 엄마만의 신념을 만든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믿음 때문에 피곤하게 사는 건 아닐까 하면서.


그런데, 정말 그랬다. 얼굴이 있었다. 그 얼굴을 찾아 가장 돋보일 만한 자리에 꽂았을 뿐인데, 우리 집 경제를 일정 부분 책임져주는 고작 상품에서 존재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간지럽히는 사랑의 메신저가 돼버리는 게 아닌가.


선물 받은 꽃을 어떻게든 남겨두고 싶어서 사진을 찍다가 엄마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떻게 찍어도 실물만큼 예쁘지 않던 사진이 얼굴을 찾아 셔터를 눌렀더니 실제와 꽤 가깝게 사진에 담겼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진가를 알아봐 주려는 노력 여부에 따라 어떤 존재의 가치는 크게 달라진다. 어여쁘게 보는 마음을 가져야지. 그 마음으로 모든 것을 대해야지.


#꽃에도 얼굴이 있다 #별 거 아닌 존재는 없다 #다만 내가 모를 뿐 #존재의 가치를 알고 고마워할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그 꽃 사진을 업로드하지 마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