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마스쿠스 Nov 15. 2024

5.1 기다림의 미학이란 없다.

기다릴 수 없었다.

원래부터 참을성이 그리 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한국 사람 특유의 빨리빨리를, 나는 늘 디폴트로 가지고 있었다.


작업도 빨리빨리.


회사일도 빨리빨리.


심지어 결혼도 빨리했다...

만 27세에 가장 좋을 때 결혼했으니 정말 인생이 빨리 어른으로 자리 잡아야 했던 건 같다.


요리에도 흥미가 없이, 빨리 나오는 음식을 좋아했다.

샐러드를 후루룩 만들어 얼른 먹고 회사 끝나고 드라마를 보거나 홈트를 했다. 피자 한 조각 먹고 말았던 적도 많다.


영어도 속전속결로 하루에 학교에 가는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영어만 100프로 쓰면서 독하게 귀랑 입을 뚫어버렸다.

영어를 빨리 배워야 했다고 생각했기에.


친구도 정말 쉽게 만들었다.

만나자마자 비슷한 점을 찾아내어 수다 떨며 맛집 가며 급속도로 친해지고 연락도 꾸준히 하며 주위에 친구로 둘러싸였다. 그런 뉴욕의 빠릿빠릿한 생활이었지만.........




하지만 남미의 이민은 달랐다.

문화 자체가 기다림이 굉장히 많았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느려터졌단 말이다!!


뭐 서류하나 떼는 데로 세월아 네월아...

무슨 절차는 이렇게 길고 복잡하고 비효율적인지 가슴을 친다. 수기 작성이 웬 말인가! 구청에서 서류하나 떼려면 5군데를 거쳐야 한다는 게 2020년대가 맞는 건가!


파라과이 사람들의 우정 또한 굉장히 올드패션이다.

이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대가족인 경우가 허다하고, 동네에서, 같은 학교부터 자라와 보통 평생을 친한 친구가 서넛은 기본이다.


새로운 친구를 어른 돼서 사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인으로는 있겠지.

하지만 어른되서 이민온, 27살의 말도 못 하는 나 같은 사람과는 아. 무. 도. 상대 안 하고 끼워주지 않는다, 이 말이다.


그리하여 난 기다려야 했다.


내가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그들 사이에 조금이라도 낄 수 있을 때까지.

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듣기에만 좋은 말을,

한여름에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식길 기다리는 거 같이.


그렇게 기다렸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는가?

그것은 다음 화에 당장 풀어보겠다.

뼛속까지 아직, 난 빨리빨리 여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 사람이니까....

이전 25화 5. 파라과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