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산, 오세안트리스 (3)

로맨스 판타지 소설 스콜피온

by 다마스쿠스

"차가 정말 달고 맛있어요, 카스피안님."

갓 내온 뜨거운 차를 호호, 불어가며 아일라는 카스피안에게 말을 걸었다.



"이 물은 산꼭대기의 고드름이 저절로 떨어지기까지를 기다렸다가 가장 깨끗한 상태일 때 받아놓은 거란다. 운 좋게도 오늘 아침에 떨어진 고드름인데, 네가 도착해서 얼른 끓인 거야. 미네랄이 풍부해서 지친 몸을 정화시키는데 탁월하지. 게다가 그 안에는 오세안트리스에서 나는 여름 약꽃을 말려 곱게 갈아 넣었단다. 여름에 햇빛을 충분히 받은 약꽃에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양기가 풍부하지.

오아시스에서 나와서 나를 보려고 추운 산을 일부터 올라왔으니 이 정도는 대접해야 하겠지?"


"... 와.. 아니 그런 것까지 신경 쓰시는 거예요? 생각보다 안 바쁘신가 보네요. 후후"


"아일라 님...!"

베르도는 카스피안을 놀리는 아일라의 능글맞음에 혀를 내두르며 얼른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그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바쁘던 안 바쁘던 이미 쌓아둔 지식은 아무 데도 가지 않는 거란다. 게다가 내가 손수 끓이는 것도 아니잖니."

육각형으로 각진 상앗빛의 넓은 테이블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카스피안은 대답했다.


"아아 예, 예에..."

찻잔에 찬 손을 데우는 아일라는 찻잔의 고아한 아름다움에도 놀라고 있었다.

사막에서 3년을 살며 조금은 투박한 것들에 익숙해져 가던 아일라였기에, 두꺼운 유리가 이렇게까지 맑고 아름답게 찻물을 담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막에서 깨어난 지 3년간 아일라의 기억 또한 미국에서의 삶에서 점점 더 흐릿해지고 있었다.

이제, 아일라는 이곳의 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리며 어느새 사막의 인연들에게 적응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두꺼운 잔이 아름다운 찻잔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처럼, 이 세계에 전혀 어울리지 않고 겉돌던 자신도 어쩌다보니 이곳에서의 생활이 자연스러워진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따끈한 차를 다시 한번 입가로 가져갔다.


"그나저나, 절기에 이렇게 갑자기 여기 오게 돼서 타르익이 널 찾고 있겠구나. 훗. 그렇게 네가 3년 전에 그와 함께 셀렌타르에 남는다고 했을 때는 많이 당황했었거든."


"그러게요. 사실 그때를 생각하면 저도 아직 이해가 되지 않아요, 분명 제가 살던 곳이었는데... 일어나 보니 전혀 다른 사막이었죠. 너무 어둡고 혼란스러운데.. 갑자기 세명의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다들 어딘가로 저를 데려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너무나 선명했다.

어두운 사막의 밤과 흩뿌려진 바다 같은 수많은 별빛들 사이, 아일라는 알다르, 카스피안, 그리고 타르익을 차례로 마주했다.


"그러게- 네 말을 들어보니 혼란도 그런 혼란은 없겠다 싶기도 하구나. 그런데 왜냐? 셋 다 모르는 이들인데 굳이 타르익을 따라나선 이유가 말이다."

카스피안도 앞에 놓인 자신의 유리잔을 똑같이 양손 사이에 쥐며 아일라의 부드러운 갈색눈을 바라보았다.


"그건..."

잠시 아일라가 말을 잇지 않자 베르도와 카스피안의 숨소리도 멈추는 듯했다.


"그건 아마 제가 사막을 좋아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하하..."


"... 싱겁기는. 네가 알던 곳에서도 너는 사막에 있었던 거냐?"


"네, 맞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제가 온 곳이 사막인데, 어딘지 모르는 다른 곳으로 따라가 버리면... 다시는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사막에 남기로 결정한 것 같아요..."


끝으로 갈수록 아일라의 목소리는 살짝 힘을 잃어갔다. 가는 손가락은 애꿎은 찻잔 받침만 살살 훑고 있었다.


"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니?"

창밖은 눈발이 다시 날리기 시작했고, 길고 높은 창을 바라보며 카스피안이 물었다.


"글쎄요.. 돌아가는 방법이 있기라도 한 걸까요...? 사막을 중심으로 먹을 것을 등에 지고 물을 허리에 차고 아무리 많이 걸어봐도, 똑같은 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 느낌만 들어요. 그러다 오아시스를 우연히 발견하고 나서 그곳에 자주 가서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해도 대답은 찾을 수 없고요. 이제는 돌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나 한 걸까, 가끔만 생각이 들고요. 그러다가 밤에 타르익의 잔소리를 들으며 사막으로 나오면 꼭 그날처럼 똑같이 별들이 저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요."


"그래.. 네가 온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 정도로 큰줄은 알지 못했구나. 별빛과 사막이 너를 보냈으니 그 사막을 못 떠나는 것도 이해가 되고 말이야. 하지만 아일라, 지금 당장은 돌아갈 방법을 알지 못하니 그 동안은 여길 즐겨보는 것도 좋겠지. 생각보다 그리 나쁜 곳은 아니니 말이다. 나도 네가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알아볼테니 너무 한가지 생각에 잠식되지는 말렴."


부드럽게 웃으며 달래는 카스피안을 대하자 아일라는 왠지 모르게 다시 힘이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말았다. 그리고 자신도 더이상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의 검푸르고 깊은 눈은 -너의 불안을 희석시키고 신뢰를 주고 싶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 더 이상 어떤말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눈은 언제까지 내릴까요 카스피안님."

화제를 돌리며 아일라는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눈발이 그리 세지 않으니 곧 그칠것 같구나. 무언가가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새로운 시작을 원하는 마음이기도 한것이니 좋은 것이지. 타르익이 너 어디 갔는지 꽤나 궁금해하고 있을 것 같으니- 베르도, 아일라를 오아시스까지 데려다 주겠니."


그말을 마지막으로 카스피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 앞으로 나아갔고, 아일라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며 마지막 남은 차를 천천히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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