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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Dec 23. 2024

카스피안 (1)

로맨스 판타지 소설 스콜피온

셀렌타르 사막에서 아일라를 처음 본 순간을 카스피안은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은 베르도와 함께 사막 탐색을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유난히고 까맣던 밤하늘과 그 하늘에 흩뿌려진 셀 수 없는 별들이 머리 위로 와르르 쏟아져 온몸에 박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답진 않군- 하며 카스피안은 생각했다. 

오늘은 물의 기운이 특별히 세서 이처럼 감정기복이 심한 걸까. 


다그닥다그닥 사막을 거니는 말, 그리고 그 견고한 청동 안장 위, 카스피안의 늘씬한 팔다리가 가벼이 얹혀 있었다.  

유하지만 어딘가는 서늘해 보이는 미소년의 얼굴을 가진 카스피안은 유독 피곤해 보였다. 

푸른 눈은 어두운 사막에서 더욱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는데, 일 년마다 33일간 지속되는 물의 기간에, 그가 지키는 물의 신전의 기운이 점점 세지고 있었기에 더욱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 기간 중, 그는 수련에 더욱 집중하고 바다의 신을 섬기는 제의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특히 이번 연도 물의 기간에는 백 년에 한 번씩 나타난다는 표식의 전설을 따라, 카스피안은 별자리를 보며 물의 기운을 느끼며 서서히 사막 깊은 곳까지 탐색 중이었다. 


스물네 살, 오세안트리스의 족장의 유일한 장자 카스피안은 아픈 어머니와 아직은 어린 여동생- 그리고 자기를 따르는 수많은 부족사람들을 대신해 표식의 꼬리를 따라 어렵고 외로운 길을 해가 지자마다 매일, 33일째 떠나고 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다음 표식을 다시 백 년의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한다. 


"카스피안님, 무엇을 발견한다 해도, 그것이 표식이란 걸 알아볼 수 있을까요? 

베르도는 궁금함에 언뜻 물었다. 

스물두 살의 베르도는 카스피안의 아버지 심복의 장자로, 태어나자마자 그와 함께 동무로 지낸 충실하고 출중한 대를 이은 심복이다. 초록의 에스메랄다를 연상하게 하는 맑고 아름다운 눈은 아몬드모양의 눈매에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늘 둘이 함께 다니면 남자든 여자든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게 하는 아름다운과 처연함을 가지고 있었다. 


"글쎄, 베르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카스피안은 고개를 들어 어두운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 느낄 수 있을 것 같구나.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말이다."

하늘의 수없는 별들 중, 그들을 이끌어주는 별들을 헤어보며, 그는 말꼬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확신을 가지고 올려다본 하늘에서 붉은 별이 낙하하는 모습을 본 것은.




별이 낙하하는 곳으로 말을 달려 최대한 빠르게 돌진했다. 심장은 이미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무엇일까. 정말, 표식인 걸까.   

끊임 없는 생각이 머리속을 잠식하고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었다. 별빛 아래 사막은 끝없이 펼쳐져 있었지만, 그가 찾고 있는 것은 이 끝없는 어둠 속에 단 하나. 

'표식이 맞을까?'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이 다른 모든 생각을 삼켰다.


그간 쌓인 피로와 책임감이 뒤섞여 그의 가슴을 조여왔지만, 동시에 희미한 설렘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설렘이 자신이 찾는 것이 맞다는 확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어두운 사막을 별빛에 의지하며 베르도와 카스피안이 도착한 그곳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마주한 알 다른 등 뒤에 누군가를 숨기고 있었다. 

그 뒤에 '누군가'가 자신이 찾는 표식이라는 느낌은 확실했다. 

힘이 살짝 빠지지만, 느른하고 여유 있게 물었다.


"역시 네가 있을 줄 알았다." 카스피안은 검은 사막에 흩뿌려진 별빛을 등지고 천천히 말을 내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경계와 미묘한 조소가 얹혀 있었다.


"그래, 난 언제나 여기 있어. 넌 늘 늦는구나, 카스피안." 알다르는 느긋한 웃음을 지으며, 한쪽 다리를 앞으로 내디뎠다. 그의 자세는 편안했지만, 눈빛은 매서웠다.


"표식을 숨긴다고 상황이 달라질까?"


"숨기다니." 알다르는 어깨를 으쓱하며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이 아이가 정말 네가 찾는 '표식'이라는 증거는 어디 있지? 혹시 내게서 뺏으려고 온 거라면, 그럴 기회는 없을 거야."


"증거는 필요 없다." 카스피안은 단호히 말했다. 

"난 확신하니까."


당연한 것 아니냐며 당돌하게 묻는 알다르를 보며 카스피안은 혀를 내둘렀다. 

알다르와는 카스피안보다 네 살 어린 불의산 족장의 둘째 아들이다. 

대대로 바다의 신전을 지키고 물의 기운을 다스려 온 자신의 집안과 불의 기운을 다스리는 알다르의 집안은 늘 대치해 오고 있었지만 그들은 아직 대치하지 않은 채 아슬아슬하게 그 선을 지켜오고 있었다. 


불의 산을 불길하다고 늘 여긴 것은 어릴 때부터 받아왔던 교육 때문일 것이리라- 고 카스피안은 느끼고 있었다.  


한발 늦은 탓인지, 알다르는 이미 그 뒤의 표식을 숨기고 차지하려 하고 있었다. 대치는 피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이렇다니 할 수 없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카스피안은 알다르의 뒤에서 살며시 나오는 누군가를 마주치자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별빛 아래, 눈처럼 희고 깨끗한 피부. 작고 갸름한 얼굴에 오목조목하게 꽉 들어찬 깊은 눈과 오똑한 코, 앙다문 입술이 매력적인 아이가 피곤해 보이는 몸을 겨우 가누고 서있었다. 

풍성하고 검은 생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와 가는 선의 몸을 덮고 있었고, 특이한 의복을 입은 것이 눈에 띄었다. 흰 상의와 거친 직물로 만든 것 같은 푸른 바지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다. 

... 이 아이가 표식이다.라는 것은 그녀에게서 나온 아우라로 이미 확신이 들었기에 카스피안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첫마디를 내뱉었다. 


"... 당신이었군."


"누구시죠? 나를 아나요?" 

아일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처음 보는 낯선 남자의 선명한 눈빛이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해 몸이 굳었다. 동시에 그가 입은 옷과 풍기는 기운은 자신이 알던 세계와 전혀 다른 곳에서 온 것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아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두 눈은 카스피안을 직시하고 있었다.


카스피안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토록 작은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이 자신을 압도하고 있었다.


".. 아니. 하지만 알 것 같아, 당신이 누군지. 그리고, 이제 알게 될 거다. 너와 나, 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것이."


아일라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카스피안을 바라보았다. 맑은 눈망울에 자신이 비추어 보일 것 같은 느낌에 그는 순간 현기증이 일 것 같았다. 마음은 벅찼지만 표를 내서는 안 된다. 


".. 아니. 하지만 알 것 같아, 당신이 누군지."


당신은, 표적이다. 내가 그동안 찾던, 아니 우리가 찾던. 그리고 이제 내 것이 될, 나의 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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