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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Dec 14. 2024

바다의 산, 오세안트리스 (2)

로맨스 판타지 소설 "스콜피온"

온몸이 물에 적셔진 아일라를 보자 특유의 흰 얼굴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베르도는 본인도 어쩔 수 없이 붉어진 얼굴을 옆으로 살짝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 이 날씨에 오아시스를 통해 오시다니..." 


그는 입고 있던 망토를 얼른 벗어 아일라의 몸을 휘릭 덮었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아일라는, 그 덕에 목부터 발목까지 폭 쌓여 물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어도 온도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다.


짙은 초록색 벨벳에 금장이 둘러진 포근하고 고급스러운 그 망토는 카스피안이 특별제작할 때 베르도의 것도 함께 제작한 것으로, 오세안트리스에 몇 없는 귀한 물건이다. 그러나 베르도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일라에게 그 망토를 벗어 둘러준 것이다. 


"나도 몰랐다고요, 또 이렇게 날 여기에 데려다 줄지..." 

신발은 어디 간 것인지 작고 흰 맨발 밑은, 옷에서 떨어진 물로 작은 웅덩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절기엔 물의 기운이 강하여서 이쪽으로 넘어오실 수 있다는 걸..."


사실 절기 따윈 알지 못한다. 게다가 늘 같은 도시에 데려다 주지도 않는 오아시스인데...

알기로는 오아시스를 통해서 항상 여행을 할수 있는 것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여행자'는 오아시스의 선택을 받는 사람으로, 절기마다 갈 수 있는 곳이 다르며 그 종착지를 아는 것은 오아시스의 몫, 그리고 여행자가 필요하고 원하는 곳이라고 전해져 온다. 그러나 아일라는 그것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타르익은 아일라가 물어올때마다 때가 되면 알게 될것이라고 늘 넘어갔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오일연구를 하고 사막을 돌아다니는 아일라에게는 오세안트리스의 절기를 셀 이유가 없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베르도를 '나는 모르쇠'하며 물끄러미 올려다보니 그때서야 그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다. 


"어쨌든 알겠습니다... 일단 성으로 가시지요. 여기 온 김에 카스피안님은 보셔야 할게 아닙니까." 


  

 





아일라가 오세안트리스에 도착하게 만든 오아시스 "에테리나"는 사막과 그 도시들을 연결해 주는 통로로, 절기마다 갈 수 있는 도시가 달랐다. 


지금처럼 추운 이베리스 절기 (약 12월-2월)의 오세안트리스는 온통 흰 눈으로 뒤덮여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다. 눈은 정확히 33일 동안만 오게 되는데, 눈이 오는 동안만은 더욱 따뜻하고 소복하다.

 

이 시기에는 모두 하던 사냥이나 행사를 하지 않고, 성 안에서 앞으로 올봄을 맞아 성을 정비하고, 시설 전체는 다시 점검하고, 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냥은 불법이다. 


오아시스는 바다의 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카스피안의 요청으로 잠시 도시밖을 나갔던 베르도에 의해 운 좋게 발견되게 된 것이다. 


겨울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바다의 산은 차갑고 맑은 공기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은빛으로 반짝이는 눈송이가 부드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올라가는 곳곳마다 장인들이 만들어놓은 듯 자연의 형상을 모티브로 한 조각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신비한 결정 모양 같기도 하고, 꽃 같기도, 아름다운 요정 같기도 한 얼음 조각들을 지나치면, 빙판처럼 반짝이는 돌길 사이로 작은 꽃들이 얼음을 머금고 피어있었다. 


장대한 산으로 올라가는 길 옆으로는 산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물줄기가 얼어붙을 듯 천천히 흘러내리며, 수정처럼 투명한 얼음 계곡을 이루고 있었다. 햇빛이 비칠 때마다 그 얼음 계곡은 오로라처럼 다채로운 빛을 뿜어내어 흡사 하늘과 대지를 연결하는 신비로운 다리 같았다. 산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차가웠지만, 그 안에 섞인 쌉싸름하면서 달콤한 향은 아일라의 몸을 휘감으며 마음에 차분한 기운을 주었다.


카스피안의 궁전이 있는 고지에 이르자, 아일라는 숨을 멈췄다. 베르도가 가리키는 곳, 바로 눈앞에는 거대한 바다의 파도가 얼어붙어 있는 듯한 기묘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물결 모양의 흰 바위들이 마치 시간을 멈춘 듯 장대하지만 조용히 서 있었고, 그 바위들 위에는 수정같이 투명한 물이 고여 있었다. 그 물은 희미한 푸른빛과 은은한 은빛을 띠며 주변의 겨울 풍경과 어우러져 천천히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정말 신의 손을 탄 건가-라는 생각을 하며 아일라는 그곳에 압도당했다.


"저곳이 카스피안님께서 계신 성입니다." 


".... 정말 아름답네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바다의 신 타이드론 님은 그분을 열렬히 섬기는 오세안트리스를 특별히 여겨 이런 아름다움을 오랜 시간에 걸쳐 선물로 내려주셨다고요. 카스피안님 또한 신전과 궁전을 아름답고 신성하게 가꾸는 데에 큰 보람을 느끼고 계시답니다." 


"그래 보여요, 정말 못 본 지 오래됐네요. 벌써 절기가 네 번은 지난 것이겠죠- 그때도 지금 절기에 여기 오게 되었던 것 같으니..."


"맞습니다. 실수로 오아시스에 빠져 서서 여기로 도착하셨을 때 카스피안님이 아니었다면 완전히 길을 잃으실 뻔했죠. "


"맞아요 후후 그때 생각만 하면..."


그때였다, 아일라의 머리를 덮은 망토 위에 살며시 무언가 올려졌다.


"그래, 나 아니었음 넌 그때... 풋!"

중저음이지만 맑고 깔끔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리자 아일라는 뒤를 돌아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리며 웃음을 지었다. 


"카스피안님!!"


"잘 지냈니, 아일라." 

온유하고 웃음이 감추어진 그의 목소리는 예의 따스해서, 베르도는 의문이 들었다. 정말 같은 사람이 맞는 건가... 내가 아는, 그가 맞는 걸까. 


아일라의 예기치 못한 방문에, 두 남자의 가슴 또한 예상치 못하게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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