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얏!!"
벌써 몇 번째 아가베에 찔리는 건지 이제는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아일라는 천 번은 족히 스물 두 종류의 아가베를 수집하러 사막의 군데군데를 돌아녔지만 잎이 유난히 푸르고 탐스러운 아가베를 보면 절로 손부터 나가는 바람에 이렇게 자주 찔리곤 했다.
"그러게 내가 조심 좀 하랬지 쯧쯧.. 누나는 너무 급하다고. 아가베도 느낄수 있어. 살며시 다가가 물어야 해, 내가 잠깐 실례해도 되냐구."
카루는 그런 아일라 옆에 붙어서는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가슴을 가로질러 맨 오래된 고동색 가죽가방 안쪽, 손바닥만한 작은 주머니에서 말린 약초를 꺼내 두어장을 아일라의 검지 손가락에 올린 다음, 다시 가방에 손을 넣어 이번엔 얇고 가는 흰 호리병을 꺼내 그 안의 오일 두세 방울을 방금꺼낸 말린 약초 위에 조심히 뿌렸다.
"아니 오일을 만들면 뭐 하냐고! 이렇게 자주 쓸 바에야 그냥 아가베 찾으러 덜 나가는 게 낫겠구만."
아일라의 손가락에 순식간에 말린 약초와 오일을 바르고 깨끗한 헝겊까지 감아 묶은 카루는 고작 열두 살.
타르익의 막냇동생이다.
사막에 정착한 지도 어느덧 삼년째인 아일라지만, 타르익은 늘 사막을 제 손바닥처럼 아는 "눈이 긴 아이" 카루를 아일라가 나갈 때마다 붙여나가게 한다.
난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볼멘소리를 하는 아일라지만 타르익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행동하며 부족장인 그를 존중하고, 사막을 존중하며, 이 세계에 점점 적응해 나갔다.
열 여섯살에 난데없이 떨어진 사막, 셀렌타르는 아일라가 잘 알고 있던 세도나(아일라가 떨어진 당시 있던 도시)와 사뭇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도 많았는데, 비슷한 점은 끝도 없이 펼쳐진 곳이라는 것, 다른 점은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것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오아시스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신성하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살았던 고향 세도나를 사랑하는 아일라는 그곳의 거대한 산들을 보며 마음속의 답답함을 많이 털어버리곤 했었다. 함께한 시간이 별로 길지 않던 아빠, 따뜻하지만 늘 남을 돕고 무언가에 열중해 있던 엄마- 게다가 외동으로 쭉 자라온 아일라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칼리스타와 마이라가 함께 있었지만 마음이 늘 허전했다.
어디서 오는 허전함인지도 모른채 열여섯의 아일라는 늘 저 먼 산과 사막을 보며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상상을 하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사막을 종횡무진할 수 있는 카루와 함께 시간이 나는 데로 셀렌타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각양각색 선인장의 꽃을 따 말리거나 아가베를 잘라와 진액을 깨끗한 나무수저로 긁어내어 오일과 배합해 보는 일 따위를 하며 즐거움음 찾았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막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그리고 빨리 가고 있었다.
이제 아일라는 열아홉, 이제 곧 스무 살이 된다.
타르익의 말로는 사막에서는 아무리 연고를 알 수 없는 이라도, 누구든 삼 년 동안 이곳에서 살아남게 된다면 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전통관례를 통하여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의식을 거행한다고 한다.
그 의식까지는 이제 한달여 남았기에, 그전까지 배우고 준비할 것이 많다며 타르익은 최근 아일라와 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지 꽤 되었다. 미안하다며 정중히 양해를 구하는 타르익은 바쁜 나날들을 보내는 것이 확실했다.
무슨 의식인 걸까... 궁금한 아일라였지만 워낙 돌아다니고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천성 때문인지, 게다가 친해진 부족민들과 어울려 정신없이 지나가는 일상 때문인지- 의식자체가 궁금해! 라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얼른 이 의식행사를 마치고 타르익이 전에 언질을 준 적이 있는 여행을 떠나는 것에 더욱 신경이 팔려있었다.
"무슨 여행인데요?" 하는 아일라의 말에 타르익은 빙긋 웃으며 여행은 모르는 것이 더 신비롭지 않냐며 평소처럼 고요히 작업실에서 오일배합법에 집중할 뿐이었다.
"오아시스로 가는 거에요?.. 그럼 좋겠다. 단 한번뿐이었지만 잊지 못하는 곳이라구요. 그곳이면 미리 말해줘요! 준비할게 있으니까."
여전히 자세히 이야기 해주지 않는 타르익이지만 아일라는 알수 있었다. 이 여행은 특별할수 밖에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