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무작정 꿈과 직업을 섞은 것은 아닌가?
"서울 미고에서 시험이 있는데 한번 쳐볼래?"
중학교 3학년 때 미술선생님이 5월쯤 물어보셨다.
시험료는 오천 원.
네, 하고 돈을 드리고 돌아섰는데 그다음 날이 되자 나는 그 돈을 다시 돌려받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에게 믿음이 없었다.
내가? 설마? 붙겠어? 돈이랑 시간이나 낭비하는 거지....
터덜터덜 버스를 타고 손에는 다시 받은 오천 원을 쥐고 나는 하교했다.
9살 때부터 꿈꿔왔던 패션디자이너로 뉴욕에서 취업한 나이는 만 23세였다.
일단 되기까지는 어찌 보면 길을 알았던 거 같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예술고등학교는 아니었지만 미술을 더 배우고
방학엔 미대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리고 미대를 들어가서 졸업을 하고 디자이너로서 취직을 했다.
그래서 난 디자이너가 됐다.
한국에서 대학 갈 성적이 안되고 자신도 솔직히 없었기에
나는 미국을 선택했다. (?)
한국보다 미국이 쉬울 거라는 얼토당토 하지 않은 생각으로 오른 17살의 유학이었다.
한국에서는 훨씬 경쟁이 세고, 좀 괜찮은 미대에 들어가려면 공부 또한 정말 잘해야 하는 것을 알았다.
평균 80점의 내 실력으로는 지방대에 잘 성적이다.
지방대가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다.
워낙 경쟁이 세기 때문에 디자이너로서 취직을 하려면 더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것이 내 머리에 박혔던 것.
그렇다고 미술천재로 미고에 간 것도 아니고 상고에 가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엄마가 인문계는 꼭 가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으셔서 아무 생각도 없이 간 인문계 고등학교다.
그 당시 나는 한국에 대한 염세적인 생각뿐이었다.
공부도 그냥저냥 미술은 조금 우수하지만 너무 많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이혼한 엄마 아빠는 각자 사시고 동생, 할머니와 셋이 살고 있다.
꿈만 생각하고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무작정 멋져 보이는, 그리고 좋아하는 옷만 생각하며 막연히 꿈꾸어 온 패션디자이너의 길.
우연한 기회로 가게 된 유학 또한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되, 나는 문제없이(그러나 착실하게 준비는 당연히 했다) 대학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뉴욕에 도착해서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히 살았다.
2008년 패션디자인과 1학년 400명 중에 열심히 하지 않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간절했고, 노력했으며 정말 출중한 실력을 가진 친구들이 꽤 많았던 것이다.
나는 학교에 들어간 것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는다.
27가 그 치열한 열기에 아직도 몸을 감싸는 센세이션을 받고 한다.
열심히 노력한 탓이었을까.
졸업하고 유학생에게는 그렇게 힘들다는 취업에 곧장 성공했다.
이것은 내가 특별히 잘났다기보다는 인터뷰에 갈 때 그 브랜드에 맞는 포트폴리오는 따로 제작하여 프린트하는 열정을 높이 사신 것이 아닌가 싶다.
운과 노력, 조금의 실력이 만난 결과였다.
그렇게 나는 만 23살에 대학졸업 후 신입으로 패션디자이너가 된다.
그러나 큰 물음표는 날 늘 따라다녔다.
Now What?
나는 패션디자이너로 취업에 성공했지만, 이게 내 꿈인가?
내 진짜 꿈은 무엇인가?
무엇이 진정한 디자이너인가.
이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것이, 그리고 고민할 만한 시간들을 회피한 것이 인생에서 큰 실수이다.
먹고사는 것에 당장 바빴기 때문에 박봉의 월급으로 겨우 살았지만
이 질문은 23살의 내가, 아니 그 훨씬 전부터 내가 해야 할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라고 자부한다.
꿈과 직업 사이에서 고뇌해 보고, 정말 내 꿈이 무엇인지 잘 탐구했어야 한다.
그리고 목표를 그에 맞게 설계하여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너는 프로젝트 런웨이에 나갈 거냔 말을 했다.
그때 내 머릿속의 대답은 "내가?? 과연... 자신 없어"였다.
나는 왜 나 자신을 못 믿은 걸까?
나는 왜 나에게 확신을 못한 걸까.
남들은 내가 할 수 있다면서 믿어 줬는데 왜 나만 나 자신을 못 믿은 것일까?
마음속에 깊이 남은 의문을 나는 풀고 싶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