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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마스쿠스 Sep 04. 2024

엄마의 편지

바빴던 엄마였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다

엄마는 점점 더 바빠졌다.


물건을 컨테이너에 꽉꽉 해오고, 가구를 디자인하고, 바잉을 하고 회사를 점검했다. 미팅을 자주 했고, 대학원에 다녔으며, 중국을 시도 때도 없이 다녔다.


엄마는 장사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날아다닌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열정적이고 다채로운 삶을 살아냈다.


나는 엄마를 많이 존경했고, 어려워하기도 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서 8년 동안 꼬박 가정주부였고, 한 번도 직무유기를 한 적이 없었다. 뭘 하든지 간에 잘 해냈다.


22살부터 31살 무렵까지 우리는 외식을 잘하지 않고, 콜라 한번 입에 대지 않고 집밥을 먹고 끓인 결명자와 보리차를 마셨다. 젊은 나이였지만 자식을 어떻게 키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아빠가 하루 12시간 일한 월급으로, 엄마가 고개 숙여 바느질해 부업을 한 돈으로 어린이 연극 연간 이용권을 끊어 매달 연극을 보여주었고, 집 앞 피아노 학원에서 체르니와 베토벤을 쳤다. 여름이면 미술 캠프, 한국 문화 캠프에 보내서 재미있게 보내게 해 주었다.


내가 18살 성인이 될 때까지, 농담 한번 하지 않고 늘 엄마 같이 위엄과 사랑을 섞어 엄마는 우리를 키워냈는데, 일까지 하고 사장님으로 이삼십의 직원을 거느리니 엄마는 정말 어려워졌다.


그러나 엄마는 엄마였다.


내가 글 읽을 나이가 되자 생일 때 카드를 써서 안방 서랍장 위에 올려놓았다. 내용은 기억 안 나지만 꽤 길고 사랑이 담뿍 느껴졌다. 엄마는 아무리 바빠도 어떤 미팅이라도 낮에는 꼭 내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가 거의, 나 피자헛 시켜도 돼? 여도 늘 받았다. 한 번도 안된다고 한 적이 없다.


엄마는 엄마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이 없어도. 사랑이 느껴졌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엄마는 내게 생일 카드를 써주며 사랑을 전했고, 나는 엄마의 시간과 사랑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엄마의 사랑의 언어는 "선물"이다.


우리의 교육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 너희는 대학에 가라며, 어려운 시기에도 늘 유학 학비를 마련했다.


이것을 어른이 되어 깨닫자 난 엄마를 더욱 이해하고 감사하고, 깊이 통감하게 되었다.


엄마의 희생을, 어려움을, 그리고 단단한 내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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