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빠는 나를 중학교 1학년이 되자 집 앞 횟집에 데려가더니 15000원짜리 물오징어 회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그리고 작고 깨끗한 잔에 소주 반잔을 따르시더니,
"네 인생의 첫 술은 아빠한테 배워야지!"
라고 하시며 오징어회에 소주를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술을 적당히, 남들이 권해도 본인이 원하는 만큼만 마시라며 조언을 해주셨다.
아빠에게 배운 술이어서 그런 건지, 나는 술에 대한 나쁜 기억보다 아빠와의 추억으로 더욱 남아있다.
한편, 엄마는 내게 선물로 받은 와인을 보여주시며, 분위기 있는 여자는 상황에 따라서 와인 한잔 정돈 즐길 수 있는 거라며 조금 따라 맛보게 해 주셨다.
둥글고 큰 병에 든 와인은 맛이 떫고 살짝 달달했다. 미지근했고, 풍미가 적고 밍밍했다.
그러나 내가 이태리에서 마신 와인은 달랐다.
이제껏 마셔본 와인과는 다른 맛이었다.
향이 깊고 풀바디인, 과일향이 풍성한 와인.
드라이하고 옅은 맛, 쌉싸름하지만 끝맛이 가벼운 와인...
2리터짜리 테이블 와인조차도 달큼하고 깊은 정말, 아름다운 맛이라고밖에 표현이 안될 정도로 맛이 좋았다.
이태리의 슈퍼마켓에 가면 와인 섹션이 상당히 큰데, 갈 때마다 늘 세일을 하고 있었다.
세일을 하는 이유는 와인이 나빠서, 저급이라서가 절대 아니다. 그저 "돌아가면서" 세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덕에 나는 룸메이트 언니와 둘이서 장을 보며 늘 새로운 세일을 하는 모든 와인을 마셔볼 수 있었다.
내가 이태리에서 가장 재미있던 일 중에 하나는, 와인을 많이 마셔보고 즐기고, 와인 마시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었다.
이태리 사람들은 점심에도 작은 잔, 게다가 와인잔이 아닌 맥주잔 같은 곳 (200ml 정도)에 와인을 마신다. 음식에 곁들여서 한잔정도만 마시는데, 그러고서 다시 일터에 돌아가 똑같이 일을 한다.
처음에는 문화충격이었는데, 이태리 사람들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고, 과음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멋지다 생각했다. 여유 있는 점심시간을 즐기고, 시에스타 (12-2시까지 상점문을 닫는 시간, 점심을 즐기기 위해/남잠 자는 시간)를 갖는 문화... 유럽 특유의 색깔이 아닐까 생각한다.
와인을 마시다 보니 치즈를 먹는 법도 알게 됐고, 음식도 관심이 생겨서 요리 수업에도 가서 전통 토스카니 음식을 만드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음식을 배우니 시장에 가서 신선한 재료를 사기 위해 토요일 아침이 되면 일어나 밖에 나갔고, 저렴한 가격으로 요리도 해 먹고 건강도 좋아졌다.
밀라노의 하숙집에 사는 이태리인 룸메이트 자매는 본인을 고향에서 가져온 와인을 마시자며 종종 초대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예전처럼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도, 와인을 보면 이태리가 자연적으로 생각난다.
20대 초반에 마셔본 향기로운 와인은 나를 더욱 이태리 식문화, 그리고 나라 자체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