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신앙. 엄마랑 아빠가 성당에서 만나 연애를 하고 성당에서 결혼까지 했으니 모태신앙일 수밖에.
천주교 신자라면 꼭 하는 예식이 있다.
바로 '첫 영성체'. 예수님의 몸이라고 불리는 하얀 밀떡을 모실 수 있도록 공부를 하고 경건한 맘으로 영성체를 모신다. 나처럼 어릴 때부터 모태신앙으로 성당에 다닌 신자라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공식적으로 첫 영성체를 모실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첫 영성체 공부를 한다. 지금은 좀 여유롭여졌지만 라떼 시절의 첫 영성체 공부는 아주아주 힘들었다.(좀 더 고급 어휘를 사용하고 싶었으나 이만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기도문을 달달 외우고 만약 외우지 못하면 집에 늦게 가야 하는.. 그렇게 난 아주 힘들게 기도문을 외우며 하루하루 첫 영성체를 할 수 있는 그날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여자는 첫 영성체를 모시면서 미사보라는 하얀 보자기를 쓸 수 있다. 요즘은 많이들 자율화가 되면서 성당에서도 크게 강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천주교 신자라면 하얀 미사보가 상징이 되어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 하얀 미사보를 담을 미사보집이 있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이쁜 천으로 된 미사보집을 부모님들은 사주셨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미사보를 사주시지 않고 직접 만들어주셨는데 참 그땐 왜 그리 그게 부끄럽던지.. 성당 달력의 그림을 접어 겉은 두꺼운 비닐로 포장해서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들어 주셨는데 말이다. 창피하다고.. 창피하다고.. 그리 울고불고 난리를 부렸지만 한 고집인 우리 엄마 셨기에 천으로 된 미사보집을 절대 사주지 않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1년 우리 큰 아들이 첫 영성체를 받게 되었다. 남자아이라 미사보를 쓸 필요는 없었지만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만든 엄마의 미사보가 더욱 생각이 났다.
손 때 묻은 미사보만큼 나 역시 나이를 먹어 이제 곧 마흔을 앞두고 있다.
이젠 엄마가 직접 만들어주신 미사보집은 그 어떤 미사보집보다 화려하고 아름답다. 엄마가 왜 그렇게 해주셨는지.. 늘 절약 정신이 몸에 베이신 분이셨기에 아마 그렇게 하셨을 것 같지만 그 이면엔 엄마의 사랑이 또한 가득 담겨있었으리라.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엄마가 어떻게 그리 아끼며 살 수밖에 없었는지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쓰다 남은 공책 뒷면을 쭉 찢어 늘 연습장으로 만들어주신 엄마. 그 모습을 지금 내가 아들들에게 하고 있다.
아끼고 아껴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도록 키워주신 엄마. 워킹맘으로 늘 체력이 부족해 집에서도 나랑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해 어릴 때는 참 많이도 원망했지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저질체력을 내가 물려받았으니...
다른 모습으로 자식들을 사랑한 엄마. 엄마가 만들어주신 미사보 안에는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어 지금도 내 아이들과 그 사랑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