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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D May 31. 2021

함께하면 놀이도 특별해진다

혼자라면 절대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순간

딸 J와 단둘이 집에 있을 때면, J의 단골 멘트가 있다.


“엄마~J 너무 심심해요. 놀아주세요!”

“엄마~그림 그리고 싶어요. 색연필 말고 물감으로 준비해주세요!”


요구 많고 똑 부러지는 J를 보고 네 살이라면 누가 믿을까 싶다.

잠시 집안일이라도 하려고 하면, “J는 누구랑 놀아요?”하며 잔뜩 삐진 얼굴로 바라본다.


늦은 나이에 출산을 하기도 했고, 에너자이저와 하루 종일 놀아준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둘째를 낳아 J와 함께 놀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나에게 공동육아는 현실이 반영된 지혜로운 육아 생활인 것이다.


이제 다섯 살이 되신 구세주가 있었으니 바로 조카 S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언제나 함께 였던 두 꼬마는 티격태격하면서도 매일 안 보고는 못 배기는 사이이다.

어려서는 마이웨이(*각자의 방식)로 놀았지만, 지금은 노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올 만큼 잘 지낸다. 정말 많이 컸다. 다양한 놀이를 준비해주기도 하지만, 이제 하고 싶은 놀이를 스스로 찾아 하기도 한다.


요즘 네 살 다섯 살 꼬마 둘의 단골 놀이는 일명 유치원놀이이다.


집에 있는 모든 인형을 꺼내와서 거실 소파 앞에 줄을 세워 앉혀놓는 게 시작이다.

콩순이와 콩콩이부터 시작해서 크롱, 루피, 곰돌이, 치타, 강아지 등 다양한 친구들이 있는데 인형 개수만 해도 이삼십 개가 넘는다. 처음에 아이들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부지런히 방과 거실을 오가며 인형을 옮겼었다. 시간 때우기 참 좋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되었는데, 침대 위의 이불을 가져와 그 위에 인형을 모두 담아 영차영차 끌며 거실로 그것들을 운반하는 것이었다. 힘을 합쳐 협동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두 꼬마의 모습에 쌍둥이 언니와 나는 놀라고 말았다. 이렇게나 지혜로운 꼬맹이들이 있다니!


이렇게 소파 앞에 줄을 세우고 나면 둘의 역할은 아주 명확하게 나뉜다.

네 살 J는 선생님이고, 다섯 살 S는 스무 개가 넘는 인형으로 유치원 학생 역을 다양한 목소리로 표현한다.

심지어 상황극 속에서 하원 시간이 되면 인형들의 학부모 역할까지 해낸다. 이렇게 둘이 노는 모습을 통해 유치원에서, 또 어린이집에서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놀이를 통해 만나게 된다.



선생님 : 한꺼번에 나오지 말고, 자~이름 부르는 사람만 나오는 거예요. 치타 오세요~

학생 : (치타 인형을 의자로 가지고 온 후 앉힌다) 네~

선생님 : (스케치북을 펴주며) 선생님이 종이 줄테니까 어떤 거를 그리고 싶어?

학생 : (굵은 목소리로) 나무를 그리고 싶어요!

선생님 : 나무?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데?

           (사인펜을 골라주) 빨간색으로? 초록색? 어~보라색? 얼른 나무 그리렴!

학생 : (치타대신나무를 열심히 그린다)

선생님 : 콩콩이 오세요~(콩콩이를 데려와 스케치북을 펴주며) 애기야~애기는 여기서 앉아서 할 거예요.



딸 J는 하고 싶었던 선생님이 되어 마음껏 리더십을 발휘하고, 조카 S는 동생의 요구에 맞춰 하나부터 열까지 배려있게 모든 역할을 소화한다. 유치원 놀이 속에 인형놀이, 그림 그리기, 간식 먹기 등 다양한 놀이가 포함되어 있고 두 시간쯤은 거뜬히 보낸다.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컸구나 대견하면서도, 스스로 놀이를 찾아 하며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니 공동 육아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유치원놀이에서 또 어떤 놀이로 바뀔지 모르겠지만, 특별한 무언가를 준비해주지 않아도 둘이 잘 어울리고, 함께하면 평범한 놀이도 특별한 놀이가 된다. 사실 이렇게 놀다가도 둘이 의견이 맞지 않아 투닥거리는 상황도 생기게 되는데, 그럴 때 웃긴 것은 조카 S가 나에게 와서 J가 자신의 말을 안 듣는다고 하소연을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엄마에게 가서 이야기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J를 혼내달라고 이모인 나에게 온다. 그러면 옆에 있던 쌍둥이 언니는 “이모가 J엄마야!”라며 껄껄 웃으며 말하지만 조카 S는 전혀 이해 못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우리는 이렇게 누가 누구의 엄마이고 딸이 아닌 모두의 엄마, 모두의 딸로 키운다.

쌍둥이인 우리는 자랄 때 항상 서로가 비교의 대상이 되는 점이 힘들었다. 공동육아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아이들에게 비교에서 오는 서운함이나 경쟁의 마음을 갖지 않도록 대해주자고 함께 다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의 공동육아에 반영되고 있다. 우리는 반영 조직인 것이다.



혼자라면 놓칠 수 있었던 평범한 순간이 함께하면 특별한 순간이 된다.



혼자 육아를 했다면, 어린이집 알림장으로 접해야 했을 순간을 두 눈에 담았다. 소중한 추억을 영상과 글로도 남기고 있다. 그걸 평생 함께 나눌 육아 동지도 있다. 누군가는 그저 아이들의 소꿉놀이를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하나의 놀이 장면에 아이들의 마음, 유머, 배려를 느낄 수 있다.


누군가 공동육아를 왜 하냐고 묻는다면,

아이들이 어울려 함께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이야기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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