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유부단하고 평화가 깨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다. X와 싸우면 늘 먼저 용서를 구해 최대한 싸움을 피했다. 연애 때는 특별히 큰 갈등이 없었기에 나는 X가 진짜 화가 났을 때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
X의 감춰진 진짜 성격을 본 것은 결혼하고나서부터였다. 내 우유부단한 성격과 X의 완벽주의적 성격은 마찰을 일으켰다. 나는 평화를 위해 X의 방식에 억지로 맞췄다. 결혼생활에서 나는 없었다. 어쩌면 연애 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X는 자신의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 혹시라도 계획이 어그러지면 X는 나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했다. X의 비난은 나를 짓눌렀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목을 죄었다. 나는 개미처럼 점점 더 작아졌다. 나는 X 앞에서 언제나 모자란 사람이었다. 일이 잘되면 모두 X가 잘했기 때문이었고 일이 잘못되면 전부 내 탓이 되었다. 내 앞에서 X는 언제나 모난 곳 없는, 티끌 하나 없는 완벽한 사람이 되었다.
X는 나의 약한 모습을 좋아했다. X는 번지점프대 앞에서 내가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절대 올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X는 2년 동안 끊임없이 나에게 번지점프 할 것을 강요했다. 산행을 함께 했을 때도 가파른 곳에서 내가 덜덜 떨고 있으면 X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사진으로 그 모습을 남겼다. 그때만큼은 적어도 X는 화를 내지 않았기에 나는 묵묵히 X의 행동을 다 받아들였다.
나의 그런 행동들은 X를 괴물로 만들었다. 결혼 전 X를 괴물로 만든 건 X의 모든 말에 맞장구쳐주는 X의 어머니였다면 결혼 후 X를 괴물로 만든 건 나였다. 나는 X의 말이 법인 것처럼, X의 행동들이 다 옳은 것처럼 치켜세웠다. 나는 그것이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만 참고지내면 모든 것이 평화롭게 흘러가리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나는 X에게 나를 억압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 결혼생활에서 나 역시도 책임이 있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물론 X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성향도 문제가 있었지만 말이다. 이혼 후에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나는 X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남의 약점을 쥐고 흔들지만 정작 반응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작아지는 사람. 내 반응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자존감이 너무도 낮아서 다른 사람을 짓눌러야만 살 수 있었던 사람. 그 사람이 바로 X였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 Javard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