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의 접견을 하고 온 날이면 늘 몸살을 앓았다. 빈 집에서 끙끙 대며 생각을 하고 또 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무심코 X의 핸드폰을 열어 X의 검색기록을 확인했을 때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X의 검색기록에는 '마사지' '오피녀' '업소'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한 구석 메모장에는 1번부터 30번까지 어떤 여자가 가슴이 크고 실력이 좋았는지 등급을 매기며 나열되어 있었다. 마지막 검색기록은 '부산 마사지'였는데 그때쯤 X는 부산에 결혼식이 있다며 혼자 다녀오고 싶다고 했었다.
사실 X는 대략 1년 전부터 나와의 관계를 거부했었다.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나에게 살을 더 빼보라는 둥, 옷을 잘 입고 다니라는 둥, 내가 너무 일찍 자서라는 둥, 혹은 내가 너무 일찍 일어나서라는 둥 온갖 핑계를 대며 나를 밀쳐냈었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서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X가 화를 내도 참았고 짜증을 내도 그냥 웃어넘겼다. X는 그 모습에 더 화가 났던 건지 내 모든 행동과 말에 시비를 걸었다. 내가 참다못해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나에게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자신이 왜 화났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 이유를 알기 전까지는 자신은 나에게 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X는 그렇게 나를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그 행동이 자그마치 1년 동안 진행됐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로 X는 기분 나빠했고 입을 닫고 나를 벌주었다. 단순히 내가 '이 연예인 참 멋지지 않아?'라고 말을 했을 때에도 X는 화를 냈었다. 자신과 비교하는 거냐면서. 하도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니까 이제는 내 말투가 사람을 화나게 하는 말투인가 라는 자책감까지 들었다.
나는 늘 X가 화난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X를 달래주어야 했다. 그래야 얼어붙은 집안 분위기를 풀 수 있으니까. 나는 경직된 분위기를 참을 수 없었다. 대화로 풀어보고 싶어 어디가 불편한 건지, 아픈 건지, 내가 뭔가를 잘못했는지 물어봐도 X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불만이 있으면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든 후 침묵으로 일관했다. X는 내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정확하게 알았다. 그리고 그 약점을 이용해 나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X는 나를 누름으로서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감을 얻었다. 울어도 보고 무릎을 꿇어도 보고 화도 내보고 짜증을 내봐도 무시하길래 하루 정도 내버려 뒀더니 X는 그 즉시 시어머니와 함께 있던 시댁 단톡방에서 뛰쳐나가 시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수차례 걸려 오는 시어머니의 전화를 피했다.
시어머니는 즉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게 나라는 사실을 안 것이다.
"너네 또 싸웠니? 무슨 일이야. 네가 그냥 남편한테 무조건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 우리 아들이 전화를 안 받는다. 내가 너 때문에 못살겠다. 가서 무조건 빌어"
그럼 나는 X에게 달려가 고개를 수그리고 기분을 풀라고 아양을 떨었다. X가 화난 이유는 그 누구도 몰랐다. X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 패턴의 연속이었다. 내가 X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X는 시어머니를 등에 업고 나를 압박했다. X의 친척 돌잔치나 결혼식이 있을 경우에는 특히나 조심해야 했다. 그때 X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상하면 X는 모든 식구가 참석하는 자리에 버젓이 불참 통보를 해버리곤 했다. 그럼 그 뒷감당은 오로지 내 차지였다. X의 친척들을 비롯해 온 식구의 불편한 눈빛을 받아내는 건 다 내 담당이라는 이야기다. 그럴 때면 늘 시어머니는 내 탓을 했다. 너만 잘했으면 일이 이 지경까지는 안 됐을 것이다라고.
X가 회사에서 칭찬을 받고 온 날은 집 안의 분위기가 화사해지는 날이다. 그때 X는 나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어떤 때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화를 내는데 이 때는 좀 안심할 수 있는 날이다. 나는 이렇게 매일 살얼음판을 걸으며 결혼생활을 지속했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속으로 늘 되뇌었던 것 같다. X가 화를 내는 건 내가 말을 잘못해서고 행동을 잘못해서라고 생각했다. 모든 게 내 탓이기 때문에 이 상황이 잘못됐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 DODJI DJIB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