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이다.
국어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기 책을 가져오게 해서 매일 10분씩 같이 읽는다.
학생들이 골라 온 책을 들춰 보며
"어? 넌 이 책을 고른 거니?"
"음, 이 책은 추리소설이구나."
"오, 감성적인 작품을 좋아하나 보네."
이렇게 조용히 얘기하며 교실을 순시한다.
1분단 2번째 줄, 여학생이 또래 아이들이 잘 읽지 않는 책을 들고 읽고 있었다.
"잠시 책 표지 좀 볼까?"
"어? 김형석 교수님 책이네? 이 책은 뭐지? 102세? 교수님 새 책인가 보구나!"
"선생님도 아세요?"
"응, 선생님도 이분 책 좋아서 여러 권 읽었어. 근데 이 책은 처음 보네. 신간인가 보네?"
책 앞, 뒤를 들춰 보며 출간일을 확인한다.
2021.12.27.1판 1쇄 발행.
"아, 역시 신간 맞구나. 선생님 몰랐네. 이 책 어떻게 골랐니?"
"엄마가 추천해 줬어요."
"아하 그렇구나, 잘 읽어 보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다른 아이 책을 보러 지나갔다.
이틀 뒤, 아이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선생님, 이 책 읽어 보실래요?"
"어?"
"전 다 읽었어요. 빌려 드릴게요."
하하하하, 아이고. 웃겨라. 요런요런 웃긴 상황.
내가 책을 학생들에게 권하거나 빌려 준 적은 많아도
학생이 나에게 자기 책을 빌려 주겠다고 찾아오는 경우?
매우 낯설다. 처음인가? 아닌가?
어쨌든, 매우 낯설다.
오, 신선한 경험.
"그래, 고마워. 그런데 선생님 다른 책 읽고 있는 게 여러 개라 며칠 걸리 수 있어. 괜찮니?"
"네!"
그렇게 해서 책을 빌리게 됐다. 학생에게.
어젯밤, 책을 가져와 밤에 차례를 살펴봤다.
목록을 보다 이 부분. 여기에서 갑자기 가슴 찡......
'그리운 나의 아내'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나려 한다.
그리운 나의 아내...
아, 교수님 연세가 102세이시니, 세상에.... 아내가 먼저 돌아가신 지가... 얼마나 오래됐겠는가...
갑자기, 가슴이 많이 먹먹해졌다. 기가 막혀서.
아내 분께서 먼저 가신 게 정말 한참일 텐데.... 그 긴 세월, 혼자 얼마나 그리우실까...
그런데 그 기간이 너무너무 길다.
김형석 교수님의 나지막한, 담백한 목소리를 글로 느끼며,
생각보다 빨리 학생의 책 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낯설지만 신선했고
재미있으면서 가슴 먹먹한 밤이었다.
그리운 나의 아내
라넌큘러스_그리운 나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