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죽은 광대를 들쳐 메고 출발합니다. 그때 채 백 걸음도 안 되어 누군가 나타나 차라투스트라에게 속삭입니다.
이 도시를 떠나라고요. 모든 사람이 차라투스트라를 미워한다고요. 그를 위험인물이라 말하고 있다고요. 그러면서 겁박도 합니다. 이 도시를 떠나지 않으면 내일 자기가 차라투스트라를 뛰어넘을 거라고요. 이 말을 하는 이는 바로 줄타기 광대를 뛰어넘음으로써 광대가 놀라 떨어져 죽게 만든 바로 그 익살꾼, 그 사람입니다.
"... 올바른 믿음을 가진 신자들도 그대를 미워하면서 당신을 위험인물이라고 말하고 있소. 사람들이 그 정도로 그대를 비웃기만 한 것을 천만다행이었음을 아시오..... 당신이 저 죽은 개와 함께 했던 것도 천만다행이었소. 그대가 그처럼 몸을 낮추었기 때문에 오늘 목숨을 구했던 것이오.... 곧 이 도시를 떠나시오. 그러지 않으면 내일은 내가 그대를, 말하자면 산 자가 죽은 자를 뛰어넘게 될 것이오." (민음사 번역)
이 익살꾼은 힘센 "짱"같아요. 학교에서 힘센 애가, 자기보다 힘센 어떤 애가 새로 등장했을 때, 다가가서 겁주는 것과 같은 이미지.
"야, 내가 이 구역 짱이야. 너, 뭐야? 야, 애들이 너 다 싫어해. 너 사라져. 오늘은 네가 네 주제를 알고 납작 엎드려서 봐 주는데, 좋은 말로 할 때 내일까지는 사라져라. 안 그러면 내가 너 밟아 버린다.(힘센 사람 버전)"
이런 느낌이 듭니다. 겁박하는 거지요. 어떻게 보면 차라투스트라를 위하는 듯, 미리 경고하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협박하는 것이지요. 모두가 다 싫어하니까 사라지라고요.
어찌 됐든, 이 익살꾼 캐릭터는 저에게 "센 사람"의 느낌입니다. 자기중심적이고, 힘도 있고, 겁박도 하는 폭력꾼 느낌, 거친 사람의 이미지 말입니다.
익살꾼은 사라지고 차라투스트라도 자기 길을 계속 갑니다. 도시 성문 입구에서 '무덤 파는 자'들도 만나는데요, 이들도 차라투스트라를 조롱합니다.
"차라투스트라가 죽은 개를 업고 가네.... 우리 손은 그 따위 썩은 고기를 다루기에는 너무 깨끗하지. 차라투스트라는 악마에게서 먹을 것을 훔칠 생각인가?..." (동서문화사 번역)
이 인부들은 자신들이 다루지 못할 정도로 광대의 시체를 더럽게 봅니다. 그런 그의 시체를 차라투스트라가 묻으러 다니는 걸 보고, 조롱합니다. 그런 더러운 걸 탐내는 걸 보니 악마와 먹을 것을 경쟁하려나 보다고도 얘기하고요. 줄 타다 떨어져 죽은 광대나 그의 시신을 처리하려는 차라투스트라나 모두들 경멸하고 조롱합니다. 그런 태도가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들에게 대꾸하지 않고 자기 가던 길을 두 시간쯤 계속 걷던 차라투스트라는 갑자기 배고픔을 느낍니다. 허기가 강도처럼 자신을 덮쳤다고 표현해요. 자신의 허기는 변덕스러워서 보통 때는 식사 후에 찾아오나 오늘은 하루 종일 찾아오지 않다가 갑자기 이 깊은 한밤중에 자신을 덮쳤다고 표현합니다.
허기? 배고픔? 의미가 뭘까.... 상징적 의미가 있을 텐데요. 이어진 이야기를 더 들어 보고 생각해 볼까요?
숲과 늪을 지나 어느 집 앞에 가서 주인장을 만납니다. 그 주인장은 노인이지요. 누구냐고 묻는 노인의 말에 차라투스트라는 말합니다.
"산 사람 하나와 죽은 사람 하나요. 먹고 마실 것을 좀 주시오.....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게 된다는 성현의 말이 있지 않소." (책세상 번역)
노인은 빵과 포도주를 줍니다. 빵과 포도주라... 성경에 나오는 음식이지요. 이 음식을 받는 차라투스트라에게 노인은 말합니다.
"여기는 굶주린 자에게는 좋지 않은 땅이오. 그래서 나는 여기에 살고 있지. 동물도 인간도 은자인 나를 찾아오지. 그대의 길동무에게도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게나. 자네보다 더 지쳐 있는 것 같으니."
"나의 길동무는 죽었소. 그러니 그에게 먹고 마시라고 할 수가 없소."
"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지." 하고 노인은 기분이 나빠진 듯이 말했다.
"내 집 문을 두드린 자는 내가 주는 것을 받아야만 하네. 잘 먹고 편안하게 가게나." (동서문화사 번역)
노인은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주는 자입니다. 동물이건 사람이건 말이지요. 예수의 음식인 포도주와 빵을 나누어 주는 노인. 차라투스트라의 길동무인 광대는 죽은 이라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말하니 퉁명스럽게 말도 하네요. 자기 음식 안 먹어서 기분이 나쁘다는 듯이요. "내 집 문을 두드린 자는 (죽었든 살았든) 내가 주는 것을 받아야만 하네."라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억지처럼도 느껴져요. 좋은 베풂이지만, 받는 사람의 상황엔 상관없이 무조건 받아내야 하는 음식처럼 말이지요. 억지스러움이 있는 노인. 하지만, 베푸는 마음이 있기는 한 노인.
음식을 먹고 길을 떠난 차라투스트라는 두 시간을 더 간 뒤, 큰 나무 밑동 구멍 속에 시체를 내려놓고 본인은 땅과 이끼 위에 누워 잠이 듭니다. 몸은 지쳤지만 영혼을 고요하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머리말 8의 내용 설명이 끝났습니다. 이제 차라투스트라의 허기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줄타기 광대의 사고사가 있었던 오늘, 그는 허기를 못 느꼈습니다. 광대의 시체를 이고 숲과 늪 한가운데에서, 그것도 깊은 밤중에 갑자기 허기를 느낍니다. 적절하지 않은 타이밍인데, 하필이면 이때 허기가 그를 찾아왔네요. 그전에 차라투스트라는 자기를 내쫓는 익살꾼도 만났고, 자신을 조롱하는 무덤 일꾼들도 만났습니다. 그때는 못 느끼던 허기를, 늦은 시각, 숲과 늪이 있는 그곳에서 느끼는군요.
이때의 허기는, 에너지의 고갈 아닐까요? 누구든 저런 시달림을 당한 뒤엔, 에너지가 다 고갈될 수 있겠지요. 보통 때의 차라투스트라는 식사 후에 허기를 느낀다는 것도 의외입니다. 보통은 식사 전에 허기를 느끼잖아요. 차라투스트라의 허기는 일반인의 '진짜 배고픔'을 의미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상징적 의미가 있겠지요.
영적인 고갈? 에너지, 힘, 포스? 그런 것의 고갈? 기 딸림?
이런 말이 툭툭 튀어 나옵니다. 낮에 시장에서 큰일을 겪고 죽은 광대를 이고 걸어오는 중요한 일을 하는 시간엔 차라투스트라 자체의 내재된 힘으로 지탱해 왔으나, 긴 시간이 흐르고 홀로 시체를 이고 걸어서 한밤중 숲에 이르자, 자신의 힘이 달리는 것을 느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적인 것을 채울 힘, 영적인 양식. 그것이 필요해서 이렇게 '허기짐'을 느꼈다고 표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 등장한 노인, 노인이 주는 빵과 포도주.
기독교의 상징적 음식이나, '따뜻한 사랑'인 그 양식이 지금 차라투스트라에겐 필요한 것이고요. 니체가 서양의 기독교 사상을 배척하였고 '신은 죽었다'라는 과격한 말을 하였으나 니체가 비난한 대상은 사랑의 실천가 예수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비난의 대상은 예수를 '죽은 뒤의 부활' 한 자로 만들어 버린 교회 교리의 창시자 바울과 그의 내세주의이다'라는 글을 다른 책에서 읽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머리말8, 이 부분에서 저는 니체가 예수의 사랑과 가르침, 그 자체를 거부하고 공격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노인이 영적으로 지친 차라투스트라에게 예수의 음식인 '빵과 포도주'를 주는 장면, 그것을 먹고 곤히 잠이 드는 차라투스트라, 그의 몸은 지쳤으나 영적으로는 고요했다는 표현도 모두 차라투스트라에게 예수의 음식인 빵과 포도주가 기운을 주고 영적 안정을 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본문 중간에 성직자들을 공격하는 글도 있는데요, 그 부분에서도 공격의 대상은 그들, 인간인 것이지 예수 자체는 아닌 것 같았어요. '신은 죽었다'라는 주장은, 사실은 인간들, 성직자들, 종교인들에 의해 '신이 죽게 된 것이다'라는 의미일 수 있겠구나라고 잠시 생각해 봅니다.
허기짐에서 예수의 음식으로, 예수의 음식에서 니체 사상의 핵심 기치 '신은 죽었다'로까지 이야기를 두서없이 해 봤습니다.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읽고 읽고 또 읽다 보면 니체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뭔지 좀 더 알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며 오늘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한 줄 요약>
"사람들의 멸시를 받으며 광대의 시체를 메고 걷고 걸어 숲 속으로 오게 된 차라투스트라!노인이 준 음식을 먹고 깊이 잠들다."
저는 철학 전공자가 아닙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2년 동안 읽고도 내용을 모르겠어서, 다시 천천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왕이면 강의 형태로 글을 써 보면 내 공부가 더 잘 될 것 같아 시작한 매거진입니다. '철학, 오독(誤讀)일지라도 내 식대로 이해해 보기'를 위한 작은 시도이니 감안하고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 강의는 세 개 출판사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번역본을 비교하며 읽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번역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고요, 이 작품이 너무 어려워서입니다. 한 책만 봐서는 이해가 잘 안 되어 세 권을 같이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