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말 9

모르는 자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강의8

by 퀘렌시아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한참을 깊이 자고 일어납니다. 뭔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기에 환호성을 지릅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하지요. 자신에게는 길동무가 필요하다고요.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죽은 길동무나 시체 말고 스스로 따라오는, 살아있는 길동무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군중들과의 대화로 그들이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고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을 경험한 차라투스트라는 이제 마음을 먹습니다. 군중이 아닌 길동무들에게 말하겠다고요.


군중이 차라투스트라가 가르침을 주고 싶은 대상이었으나, 워낙 우매하여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이제 그 중간 단계의 대상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겠다는 얘기이겠지요. 차라투스트라에겐 시장에서의 경험이 나름, 큰 깨달음이었나 봅니다. 경험치가 쌓인 것이지요.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이들에게 바보 소리도 듣고 미움도 받는 차라투스트라.

십우도(十牛圖)의 입전수수(入廛垂手) 단계가 떠오릅니다. 깨달음의 수행 과정과 완성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 '십우도'인데요, 십우도를 꼭 종교적으로만 보지 않고 '본래의 자유로운 나'를 찾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요. 보편적인 '십우도'의 해석 관점으로 볼 때, 그것의 가장 마지막 단계가 바로 '입전수수'입니다. 소를 찾는 10단계 중 9단계까지의 경지를 다 지난 이는 마지막 단계에서 대중 속으로 들어갑니다. 시장, 저자에 들어가 사람들을 돕는 것. 그 행위의 단계. 그게 바로 입전수수입니다. 그런 이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깨달은 이'는 보통 사람들과 달라서 남들이 보기엔 그가 더 바보스러워 보입니다. 별 볼 일 없어 보이기도 하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무던하게 그들과 섞여서 그들을 돕는 단계, 그게 입전수수입니다.


불교 선 철학의 십우도 말고도, 플라톤의 동굴 비유도 떠오릅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플라톤은 동굴 비유를 하고 있어요. 동굴 밖을 알아본 사람은 동굴 밖으로 나가 깨달음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진정 깨달았다면 동굴 안으로 컴백해야 한다고 플라톤은 말합니다. 그 안에 있는 어두운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우매함을 위해서 말입니다. 처음 동굴 안으로 다시 들어오면 어두워서 적응을 못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하지만, 도망가지 말고 현명하게 처신해야 해요. 그들에게 적응하며, 그들과 섞이며, 그들에게 밝음을 전해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게 깨달은 자의 책무라고 플라톤은 말하고 있지요.


예수님도 떠오릅니다. 예수님도 온갖 박해를 받고 사람들의 모함을 받으면서도 사람들 속으로 계속 들어갑니다. 그 길이 고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아도 다 받아 냅니다. 그리고 희생과 사랑을 실천하지요.


제가 니체의《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머리말 부분을 읽으며 느낀 감정은

'참 애쓰고 있구나. 이렇게 미움을 받고 마음의 상심을 하는데도, 사람들 안에 있구나.'였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사실 굉장히 여린 심성의 사람 같았어요. 말을 멋있게, 강하게 하고 있지만, 감정의 결이 굉장히 섬세한 게 느껴졌습니다. 이는 작가 니체의 감정선이 투영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차라투스트라가 광대의 시체를 혼자 거두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계속 받는데도, 대중 안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니체가 창조한 '차라투스트라'는 동서양 종교와 철학에서 말하는 '깨달은 이'의 마음씀과 행동을 하고 있다고 느꼈지요.


지금 이 부분에서는 차라투스트라가 말귀를 알아듣는 중간 대상자를 필요로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자신의 가르침을 펼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을 '아하!'하고 깨달은 것이지요.


차라투스트라는 기껏 가축이나 돌보는 양치기라든지 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가축 떼 중에서 많은 가축을 꾀어내기 위해 내가 왔다. 군중과 가축 떼는 내게 화를 내리라.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양치기들로부터 강도라고 불리기를 바라고 있다. (민음사 번역)


'방금 나는 목동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를 좋은 사람, 올바른 사람이라 여기고 있다. 방금 나는 목동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바른 신앙을 가진 신자라 부르고 있다.... 그들은 누구를 가장 미워하는가? 그건 그들의 가치관을 깨뜨리는 자, 파괴자며 범죄자다.' (동서문화사 번역)


나의 최초의 길동무여.... 이제 그대와는 이별이다..... 새로운 진리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양치기가 되어서도 무덤 파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된다. 다시는 군중과 말하지 않으리라. 죽은 자와 말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민음사 번역)


'나 창조하는 자, 추수하는 자, 축제를 벌이는 자들과 벗하리라. 나 그들에게 무지개를, 그리고 위버멘쉬에 이르는 층계 모두를 남김없이 보여주리라.' (책세상 번역)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합니다. 자신은 양치기나 개가 아니라는 거지요. 어리석은 양들을 지키고나 있는 양치기나 개 말고요, 똘똘한 양들을 아예 데리고 갈 강도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양치기 자신은 스스로를 바른 신앙인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양치기가 미워하는 자는 기존 가치관을 깨뜨리는 자, 파괴자, 범죄자라고도 얘기합니다. 이 모든 조건에 해당하는 이가 바로 차라투스트라 본인인 것이지요. 기독교의 양치기 비유를 사용하여 이들에 대한 반격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점이라는 것을 차라투스트라는 밝힙니다. 니체가 살던 당시의 서양 사상, 철학, 문화의 중추는 기독교인데요, 기독교를 믿는 이들 중, 자기 말귀를 알아듣는 대상은 자기 쪽으로 꾀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으로 저는 해석합니다.


추수 이야기는 신약 [마태복음] 9장 37절에 나오는 구절인데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넘쳐나는데, 일꾼이 적구나."


마치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차라투스트라 자신도 추수할 자를 원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하는 자, 추수하는 자, 축제를 벌이는 자들에게 위버멘쉬의 과정을 알려주겠다는 말은 즉, 알아듣는 이에게 정성을 쏟겠다는 말로 저는 들립니다. 나름 대중들 중에서 자신의 타깃 층을 고른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앞서 얘기한 십우도의 깨달은 이나 예수, 플라톤의 깨달은 이(철인)와는 좀 색깔이 다른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구별 없이 사랑하고 베푸는 것은 아닌 것 같으니 말입니다.


마음속으로 위와 같이 말한 차라투스트라, 분명 죽은 길동무는 안 데려가겠다는 것이지요. 이젠 산 길동무와 함께 하겠다는 말. 우매한 군중들과는 말을 섞지 않겠다고 결심한 차라투스트라. 제가 보기엔 소심하게 토라진 듯해요. 하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차라투스트라입니다.


인간이라면 사실 누구나 이런 마음먹을 수 있지 않나요? 자기 말을 알아듣는 사람에 대한 동경.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 말하고 싶은 마음. 차라투스트라의 경우, 자신이 우위에 있으면서 가르침을 주고 그에 동조하며 따르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심리를 표현한 것인데요,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이런 차라투스트르의 좌충우돌이 좀 더 인간적이고,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가 되어가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니체의 위버멘쉬는 스스로를 극복해 나아가는 사람이니까요. 고통이라는 과정 없이 바로 성공의 결과적인 모습을 지닌 이가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가 아니기에.

작품 속 차라투스트라가 바로 위버멘쉬 아닐까요?


오늘은 달콤한 잠을 자고 깨달음을 얻고 차라투스트라 얘기를 십우도, 플라톤, 예수 등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연결 지어 봤습니다.


이상 오늘 강의 마치겠습니다.


<한 줄 요약>

"아하! 나에겐 내 말귀를 알아듣는 길동무가 필요해." 잠에서 깬 차라투스트라의 깨달음.





저는 철학 전공자가 아닙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2년 동안 읽고도 내용을 모르겠어서, 다시 천천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왕이면 강의 형태로 글을 써 보면 내 공부가 더 잘 될 것 같아 시작한 매거진입니다. '철학, 오독(誤讀)일지라도 내 식대로 이해해 보기'를 위한 작은 시도이니 감안하고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위버멘쉬, 초인 뜻이 궁금하신 분 : 아래 강의 보시기 바랍니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말 3

https://brunch.co.kr/@csm-93/108



* 이 강의는 세 개 출판사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번역본을 비교하며 읽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번역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고요, 이 작품이 너무 어려워서입니다. 한 책만 봐서는 이해가 잘 안 되어 세 권을 같이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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