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씨 고운 아이

글감을 준 일상의 이야기

by 퀘렌시아

'마음씨 고운 아이'라는 말이 속에서 나왔다.


이런 아이를 처음 본 것 같다. 놀랐다.




한 달 전 즈음.



우리 반엔 도움반 학생이 한 명 있다.


이날 영진(가명)이는 복도에서 울먹이고 있었다.


교실에서 있었던 학급 일 때문에 말이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자 속상해서 복도 구석에 몸을 밀어 넣고는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종례 시간이 끝났고, 청소 시간이 됐으며, 이제 집에 가야 하는 시간인데도


영진이는 떼를 쓰는 몸짓으로 그렇게 울먹이고 있었다.


담임교사인 나는 마음이 참 많이 쓰였다.


벌써 20여분을 달래고 아이와 얘기를 나눈 뒤였다.


교실 청소 중이었기에 청소 당번 아닌 아이들은 다 나가거나 집에 가거나 한 상태.


"안 돼, 영진아. 속상해도 학급 규칙이라 영진이만 그렇게 할 수는 없어.

다른 아이들도 다 자기 자리 마음에 안 들어도 제비 뽑기로 나온 대로 자리 앉잖아.

맨 뒤이든 맨 앞이든... 영진이도 여태 그렇게 해 왔고... 영진아, 이제 집에 가자. 응?"


복도에 서 있는 영진이를 한 번 더 달랜 뒤, 난 교무실에 바삐 가야 했다.

방과후보충 수업 시간 시작이 바로 곧이었기에 교무실에 가서 수업 자료를 챙겨서 나와야 했기에.


교무실에서 나오며 영진이가 아직 집에 안 가고 복도에 서있나 궁금해서 복도 끝을 봤다.

'어? 뭐지?'


검은 등이 보였다. 뭐지? 저게? 영진이 앞에 뭔가 어두운 게 막고 있었다.

눈이 잘 안 보여 궁금해서 수업 교재를 들고 영진이 있던 자리 쪽으로 가 봤다.


가 보니, 영진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듯 보였고 그 '검은 등'은 긴 머리에 검은 패딩을 입은 어떤 여학생이었다.


그 아이는 날 못 보고 있는 상태, 등 돌린 채 서서 영진이에게 뭔가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아, 여기 춥지 않아? 왜 울어? 무슨 일 있었어?"


'헉.... 얘, 뭐지? 어머머머..... 세상에. '


"얘야, 넌 누구니? 난 영진이 담임 선생님이야."

"아, 네. 전 이 친구가 여기 혼자 서 있어서 말 걸고 있어요. 전에도 얘한테 말 걸고 싶었는데, 못 만났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와 보니 여기 이렇게 울먹이며 서 있어서요."

"너, 영진이 알아?"

"아니요, 몰라요. 그런데 말 걸고 싶었어요."


헉.... 헉.... 헉.... 정말,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어떻게 이런 아이가 있지? 어머머머....


난, 진심. 감동을 받았다.


"응, 오늘 우리 반 자리 뽑기를 했는데, 영진이가 자기 자리 싫다고 오늘 우는 거야. 보통 때는 계속 앉았는데... (일부러, 그 여학생에게 도와 달라는 눈짓을 하며... ) 원래, 자리는 뽑으면 모든 아이들이 자기 자리 앉는 거잖아(그 여학생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눈치 빠른 여학생, 날 지원 사격한다]


"그치, 영진아. 우리 반도 그래. 나도 그래. 자리 규칙이라 지키는 거야. 오늘 집에 가고, 내일 오면 마음에 들 거야. 우와, 너 머리 예쁘다."

[방글방글 웃고 있는 영진이....]


아.... 이 장면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가슴 쿵! 진동이 느껴진다.


이 아름다운 장면.

고등학교, 이 학교에서 영진이에게 먼저 말을 거는 애는 없다. 우리 반에서도 거의 모든 아이가 이런 식의 대화를 영진이에게 건네지 않는다. 그냥 가르친다 해도, 고등학생 애들은 자기 성품대로 도움반 학생들을 대한다.


짖궂은 중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들은 도움반 친구들을 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림자처럼 대한다. 아무도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 아무도... 그냥 둔다.


게다가 영진이는 말이 전혀 없는 아이이다. 그냥 울거나, 수업 중에 비명을 지르거나... 그러고는 보통 때는 또 조용히 있기에, 아이들은 아무도 영진이에게 친구로서 말을 걸지 않는다.


오늘, 영진이에게 말을 걸고 있는 이 여학생은

그냥, 영진이가 울고 있어서 말을 걸고 달래고 있었고, 예전에도 영진이에게 말을 걸고 싶어 했던 애다.

영진이를 보면 자기 수준의 정신 연령이 안 되는 친구라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이 아이는 예전부터 영진이에게 말을 걸고 싶었던 것이다. 심지어 다른 반인데....


"넌 몇 반이니? 참 고맙다. 영진이가 좋겠다. 친구가 마음을 달래 주어서. 이름이 뭐니?"

"전 5반이에요. 김수진이에요."

"여긴 어떻게 왔어?"

"전 선생님 반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해요. 그런데 오늘 얘가 울고 있어서요."

"그렇구나,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늦어서 먼저 갈게. 영진이 집에 가라고 해 줄래?"

"네~~~"


수업을 들어가면서도 신기함과 감동의 짠함이 내 가슴속에 가득했다.

수진이? 얜 정말 마음씨가 고운 아이이구나.


이런 사람이 정말 마음씨가 고운 거지. 아....


이런 아이를 보게 된 게 기뻤고, 우리 영진이를 친구로서 위로해 주어서 고마웠다.


다음 날, 도움반에서 우리 반 학급에 올라와 앉아 있는 영진이.

기분 좋게 어제 뽑힌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우와, 세상에... 성공!


사실, 어제 한 달에 한 번 하는 자리 배치에서 영진이가 울먹이고 속상해 하자, 사실을....

반 아이들과 나는 회의를 했었다. 뽑은 자리가 싫은지 영진이는 복도로 나가서 울었고 영진이를 10여분 달래며 얘기 나눈 나는... 다시 교실로 돌아와 반 아이들과 잠시 의논을 했다.

"영진이가 자리가 마음에 안 들어 저렇게 울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 하고... 솔직히 상황을 얘기했다.


그때 우리 반 성민이가 손을 번쩍 들더니,

"제가 바꿔 줄게요. 제 자리는 좋은 자리니까 좋아할 걸요? 전 앞자리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영진이가 그 자리 싫어할 수도 있어. 성민아, 너 자리는 중간 자리니까... 영진이는 끝자리 좋아할 텐데... 강익아, 자리 바꿔 줄 마음 있어?"

"아니요, 아니요. 전 이 자리 진짜 고대했다가 된 거예요."

[반 애들, 다 까르륵 웃음.. 강익이의 진심이 팍팍 느껴져서, 계속 앞자리에 앉았던 강익이]


"그래, 그래... 근데 선생님은 좀 고민이 돼요. 이렇게 자리를 바꿔 주는 게 맞는지... 영진이도 규칙을 따르는 걸 배워야 하니까요... 그런데도 계속 영진이가 힘들어하면, 그때 의논합시다. 여러분 의견은 일단 알았습니다."


이렇게 하고, 종례를 끝내고 영진이를 복도에서 달래다 청소 지도하다 난 수업 때문에 교무실에 간 상황이었는데...


그 천사가 나타난 거다. 마음씨 고운 아이.


'얘야, 넌 어쩜 그렇게 마음이 곱니? 정말 곱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보충 수업을 끝내고 나오며 복도를 보니, 영진이는 안 보였다. 집에 잘 간 거겠지.

교무실에 와서 그 여학생 담임 선생님께 그 수진이라는 아이에 대해 얘기를 들려 드렸다.

"선생님, 김수진? 얘, 정말 감동이에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하며 줄줄줄 이 아이와 있었던 일을 담임 선생님께 들려 드렸다.


무뚝뚝한 남자 담임 선생님 왈

"음, 수진이. 착실하죠. 성실하고."


음.... 뭔가 부족하다. 착실과 성실이라... 물론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오늘 본 그 아이의 모습은 정말 가슴 따뜻한, 마음씨 고운 그 순수한 마음이었다.

아, 이걸 정말 어필하고 싶은데....


얘가, 우리 반이었다면.... 난 정말 생기부 행발(학교생활기록부 행동특성및종합의견)을 칭찬칭찬으로 엄청 쓸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일화까지 소개하며.... 내가 받은 감동을 말이다.


나의 이 글을 보시고, 그게 뭐 그리 감동일까 싶은 분이 있으시겠다.

하지만, 난 정말.... 이런 식의 따뜻함을 보인 애를... 본 적이 없다.

교직 생활 24년 동안.


봉사 점수 때문이 아니라, 도우미 학생으로 지정되어서가 아니라... 부모님이 목사님이시거나 봉사 일 하시는 분이라서가 아니라... 좋다니까 교육으로 하도 들어서가 아니라... 의무로서가 아니라....


오롯이, 울고 있는, 뭔가 부족해 보이는 아이에게 먼저 다가와 따뜻하게 말을 걸고 위로하는 청소년을....

이런 따뜻함이 잊히지 않는다.


한 달이 지났지만, 아마 세월이 흘러도 오래오래 기억날 것 같다. 그날의 삽화가.


영진이는 그다음 달인 12월. 새로 바뀐 자리에 잘 앉아 있다.


영진이가 하나 배우고 넘어갔기를... 떼쓴다고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좋은 친구가 자기에게 있다는 걸, 아이가 아는 것 같다.


며칠 전 치러진 학교 축제 때, 강당에서 또 수진이가 영진이에게 와서 말을 걸고 같이 서 있다.


둘이 사진 찍어 줄까? 그랬더니, 영진이가 웃는다.


영진이, 사람 엄청 가리는데... 수진이가 좋은가 보다.


찰칵!!! 두 아이의 모습다. 영진.수진.



뒷얘기 하나.


영진이에게 그 일 있은 며칠 뒤, 맨 뒷자리가 좋았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자기는 벽이 좋단다. ㅋㅋㅋ

아이에겐 자기만의 취향이 있었던 것이다. 벽 자리라.... 엄청 로얄석인데. 맨 뒷자리 못지않게.




학교엔, 참 많은 아이가 있다.

하나하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