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약을 먹기 시작한 날

소아심장과 진료

by 담담

두 번째 탈장 수술 후 두 달, 우리는 다시 심장검사와 진료를 위해 S병원을 찾았다. 소아심장과 의사가 제안했던 시기보다 1년이나 앞당겨 잡은 검사였고, 지난번 마지막 검사에서 대동맥 증가 추이가 줄었다고 했으니, 이번에도 큰 특이사항까지는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심지어 이렇게 검사 및 진료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사실 여러 번 요청했던지라, 1년이나 앞당겨 잡은 내가 불안증이 높은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지 너에게 문제가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번 검사에서는 네가 진정제를 먹어야 했다. 나는 지난번처럼 내가 달래서 해보겠다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탈장 재수술까지 하면서 너는 이미 병원에 대한 거부감과 공포심이 잔뜩 생겨 의료진을 보거나 진료실을 들어가기만 해도 우는 아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병원을 자주 다니지 않았으면 이 나이에 병원 무서운 것은 몰랐을 텐데.’ 아쉬운 생각들을 숨 쉬듯이 하며, 진정제를 먹지 않겠다는 너를 붙잡고 겨우겨우 먹였다. 간호사는 네가 진정제를 먹고 30분 안에 잠들지 않으며 진정제를 더 먹어야 한다고 했다. 너는 진정제를 먹은 지 30분 정도 지나서부터 눈을 감기 시작했고 다행히 35분 정도 지나서는 잠에 들었다. 내가 이 상황에서 바란 것은 '진정제를 더 먹지는 않는 것'과 '검사 결과가 좋은 것' 이거였다.


검사를 마치고 너는 아직 헤롱거렸고 헤롱거리는 너를 너의 아빠가 안고 우리는 다 같이 진료실에 들어가 의사를 마주했다. 의사는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모니터를 보며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대동맥이 많이 커졌네요. 수술은 100%고 약 먹어볼게요. 6개월 뒤에 오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무너져 내렸다. 지난번 진료 때 2년 뒤 팔로업을 이야기하며 안도하게 했던 그 의사와 동일인물이 맞나 싶었다. 나는 무슨 상황인 건지, 얼마나 늘어난 건지, 수술은 언제 한다는 건지, 지금 수술할 상황이 아닌 건 맞는지 질문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더욱 나를 황당하고 절망하게 했다.

“수술은 여러 번 하게 될 거예요. 할 때마다 아이에게 매우 힘든 수술일 거예요. 그리고 지금은 수술하기에 작아요. 어차피 수술할 상황이어도 우선 키워야 해요~”

무책임하고 잔인한 말들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진료실을 나와 병원 복도에서 누가 들으라는 듯이 하소연을 했다.

“아니. 2년 뒤에 오라며. 그런데 우리가 계속 앞당겨 달라고 난리 쳐서 1년이나 더 앞당겼는데 뭐? 대동맥이 많이 커졌다고? 우리가 예민하게 안 굴었으면 어쩔 거였는데. “

“그리고 뭐? 대동맥이 커졌네요~ 약 먹일게요~? 어느 정도로 커졌다는 건지 말도 없고 무슨 약인지도 설명도 없고. 지금 2년 뒤에 보자고 지가 한 말을 뒤집어엎는 건데 설명이 저런 식이야. 그럼 뇌출혈 환자한테는 뇌출혈이네요~ 수술할게요~ 치매 환자한테는 치매네요~ 약 먹을게요? 이렇게 하면 끝인 거야?”

이러면 나도 의사해!!!

분노와 좌절감에 온몸이 떨렸다. S병원 소아심장과 그 의사에 대한 신뢰는 산산조각 났다. 나는 더 이상 이곳에 너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분노와 실망감을 가득 안은 채 바로 다른 병원, A병원에 진료 예약을 잡았다. 너를 위한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예약은 바로 일주일 뒤로 잡혔다. 그리고 너의 약을 타기 위해 약국을 가면서 말했다. “신은 없어. 신이 있다면 이러면 안 돼.” 하늘을 원망했다.


이렇게 병원에서는 의사에 대한 실망감을 쏟아붓고, 나와서는 하늘에 대고 화를 내고, 그다음은 나를 향한 분노였다. 나는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왜 대동맥비대라는 것을 알고 이 병원 진료만 봤어?‘

‘다른 병원 진료 잡아서 더블 체크를 미리 했으면 이 정도까지 오기 전에 알았을 수 있잖아.’

‘네가 귀찮았던 것은 아니야?’

‘연차 내는 게 싫었어? 너는 네 커리어가 네 선택으로 낳은 아이보다 중요해?’

...

이 생각의 끝에는 너를 낳기만 하고 돌본 것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큰 죄책감이 있었다. 내가 커리어를 이어갔던 것은 네가 건강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설령 아프더라도 지금부터는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복직한 지 이제 반년 지난 시점에 너는 그동안 두 번의 수술과 신드롬 진단을 받고 이제는 심장약까지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건. 바로 잡아야 해.’ 나는 뒤늦게나마 외양간을 고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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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S병원 소아심장과 진료 본 직후 간 전시회.

나는 마음이 무너졌지만, 너는 여전히 웃고 있었어.

앞으로도 엄마의 불안과 분노를 너에게는 절대 옮기지 않을게.

좋은 기분만 나눠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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