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과 서운함

by 담은


우리는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받으면 고마움을 느낀다.
그것이 정성스러운 선물이든, 말 한마디의 배려든, 바쁜 일상 속에서 내어준 귀한 시간이든.
사소한 것일지라도 ‘고마움’은 마음을 따뜻하게 감싼다.
고마운 사람이 떠오를 때마다, 볼에 햇살이 스치는 듯 미소가 번져온다.


하지만 그 고마움은 생각보다 오래 머물지 않는다.
마음에 작은 서운함 하나가 스며드는 순간,
오랫동안 쌓아왔던 고마움의 감정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이런 생각이 마음속에서 부풀어 오르면,
고마웠던 기억들은 차츰 흐릿해지고 서운한 감정만 또렷하게 남는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같은 무게의 고마움과 서운함을 저울 위에 올리면 왜 서운함을 더 무겁게 느끼는 걸까?’

아마도 서운함은 부피가 큰 감정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같은 질량이라도 훨씬 더 크게 부풀어 올라 마음속을 차지하는 감정.
고마움은 물처럼 조용히 스며들지만,
서운함은 바람처럼 거세게 밀고 들어와 마음의 풍경을 흔든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고마운 마음보다 서운한 감정을 더 오래, 더 선명하게 기억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서운함은 금세 화가 되어,
우리가 한때 애정을 가졌던 사람에게 향한다.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그렇게 아껴줬는데 왜 이런 말을 하지?’
그런 생각들이 속에서 천천히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감사했던 마음은 자취를 감추고
서운함만이 마음의 한가운데를 점령한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과 나누었던 따뜻했던 기억들마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흐미해진다.

하지만 그 감정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사랑받고 싶다’는 절실함이 숨어 있다.
‘그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었다’는 진심의 잔향.
그래서 서운함은 어쩌면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다.

우리는 관심 없는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을 내주었던 사람, 함께 시간을 나눈 사람에게 더 쉽게 상처받는다.
그 감정의 무게는 우리가 그 사람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를 말해준다.


그래서 나는 서운함이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정말 이게 그 사람의 진심일까?’
‘그래도 그 사람에게 고마운 게 많지 않니?’
‘아직도 그 사람이 내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건 아닐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조금씩 깨닫는다.
잊고 있던 고마움의 조각들.
말없이 건네던 따뜻한 눈빛,
손을 잡아주던 그 순간들,
아 말없이 옆에 있어주던 시간들.


그 모든 고마움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감정들에 가려져 있었을 뿐.
감사함은 조용히 묻혀 있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천천히 되살아 난다.


그제야 나는 조심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그 사람도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었구나.’
‘그 순간엔 표현이 서툴렀던 것뿐이었구나.’


그렇게 실망과 서운함으로 굳었던 마음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감정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고,
나는 다시 그 사람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아마 우리는 평생을 고마움과 서운함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기대하고, 실망하고, 상처받고, 다시 이해하고.

그 반복 속에서 관계는 단단해진다.

다치고, 치유하고, 조금씩 더 깊어지고. 조금씩 더 따뜻해지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마음속 저울 위에
작고 조용한 ‘고마움’ 하나씩 올린다.

그리고 기도하듯 속삭인다.

“내 마음이 상처보다 더 다정하길.

서운함보다 고마움을 더 오래 기억하길.

언제나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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