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주의****
본 글은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중요한 스포일러를 가득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전에 융분석(Jungian analysis)을 수년간 받았다. 개인적인 일로 심리치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은 내가 살면서 결정했던 일 중에 가장 잘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일 중 하나이다. 몇 년 간 매일 꿈을 기록하고, 상담을 받으러 가서는 기록된 꿈들 중 하나를 골라 해석받는 작업을 반복했다. 그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꿈 하나가 바로 내가 해리 포터가 되어 마법을 부리는 꿈이다. 아마 당시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나와 해리를 일부분 동일시했던 것 같다. 다만 나는 꿈해석을 배워본 적이 없기에, 이렇게 이해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당시에 꿨던 꿈과 분석가 선생님께서 해석해 주신 내용을 여기에 구구절절 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유사한 원리를 지금의 나에게 적용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최근에 해리 포터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나와 해리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찾아봤다. 일단 생각이 지나치게 많고, 어떤 측면에서는 자신감이 부족한 점이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해리나 나나 어떨 때는 남들 앞에서 논리적이고 신랄하게 할 말을 다 하기도 한다. 가장 유사한 점을 꼽아보자면 '타인을 구하거나 도움을 주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점을 들고 싶다. 즉, 해리와 나에게는 모두 구원자 콤플렉스가 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자신에게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는 성향이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단기역동적 상담모델(TLDP; Time Limited Dynamic Psychotherapy)이라는 심리치료 이론을 좋아한다. 그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대인관계에서 저마다 품은 '소망'에 따라 행동하고 타인의 반응을 예측한다. 길고 지루한 이론 강의는 생략하겠다. 어쨌거나 나는 TLDP 이론을 통해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미디어 속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해리 포터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큰 소망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은 소설 내에서 명확하게 나온다.
위의 사진은 5권 불사조 기사단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불사조 기사단편 후반부에 해리는 볼드모트와의 정신적 연결을 통해 볼드모트가 시리우스를 해치려는 장면을 목격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장 마법부로 찾아가 자신의 대부를 구하려고 하지만, 이성적인 헤르미온느가 이를 막아선다.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결과적으로 헤르미온느의 주장이 맞았고, 마법부에서 죽음을 먹는 자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시리우스는 허무하게 죽어버린다. 물론 그의 죽음을 해리의 실수 때문만이라고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시리우스의 무모하고 오만한 면, 덤블도어가 해리를 온전히 믿지 못했던 것 등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적어도 작중에서 해리는 대부의 죽음을 온전히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5권 전반에서 해리는 정서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과장 조금 보태서 해당 작품 내내 해리는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며 누군가와 다툰다. 시리우스가 죽은 후에는 덤블도어의 교장실에서 물건을 던지고 부수면서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이 묘사될 정도이다. 그래서 불사조 기사단편은 독자 입장에서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락적인 재미를 넘어서, 내 나름대로 해리의 심경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봤다. 그냥 사춘기라서 불안정하다고 설명하면 될까? 아니면 좀 더 소설의 맥락을 고려해서, 4편에서 세드릭 디고리가 죽은 일에 더해 시리우스의 사망까지 겹치면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것이라고 보면 될까?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째서 해리가 5편 말미에 그렇게나 깊은 절망과 자기혐오에 빠졌을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똑같은 일을 겪어도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TLDP 관점에서 봤을 때, 해리는 '자신이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는 소망을 가졌기에 끊임없이 사건 사고에 스스로를 내던진다. 1편에서는 야간에 기숙사를 빠져나와 몰래 마법사의 돌을 지키러 가고, 2편에서는 바실리스크에게 잡혀간 지니를 구하러 가며, 3편에서는 누명을 쓴 시리우스를 탈출시키려고 타임터너를 사용한다. 7권 전체를 한 줄로 요약하라고 하면 '해리 포터가 누군가를 구원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왜 해리는 이런 강력한 구원자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을까? 어째서 이 아이는 자신의 주변에 발생하는 일을 과도하게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자신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누군가를 구해내려고 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극히 독자들의 해석에 달린 문제라고 본다. 누군가는 볼드모트라는 사악한 마법사의 손에 부모님이 죽고, 자신은 살아남은 아이라는 진실을 알게 되면서 그 결과로 영웅 심리가 생겼다고 설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해리의 이런 성격은, 해리가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깨닫기 이전부터 이미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편에서 해그리드를 만나기 전까지 해리는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셨다고 알았고, 이모네 가족들에게 정서적으로 학대와 방임을 겪으며 성장했다. 어린 해리에게 세상은 아무도 자신을 돌보거나 지지해주지 않는 곳이었다. 이모와 이모부, 사촌은 모두 숨 쉬듯 해리를 비난하고 괴롭힌다. 그들은 해리가 벽장에 갇히는 것도, 지독하게 싫은 피그 할머니네에 맡겨지는 것도,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잘리는 것도 모두 해리가 잘못을 저지르거나 이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해리는 자연스럽게 '해리 포터를 비난하는 태도'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했을 것 같다. 그것은 결코 해리 자신의 것이 아닌데도, 마치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실 그 누구도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심리적으로 척박한 환경에 놓였다고 해도, 살기 위해서는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설령 '해결'하지 못해도, 일단 뭐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11살 이전의 해리에게 문제를 처리해 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수없이 많은 학대와 어려움을 견뎌낸 결과, 해리 포터는 어떤 상황이든 자신이 직접 해결하려고 뛰어들게 되었다고 추측해 본다. 위에서 언급한 5편에서의 사건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리의 행동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2편(비밀의 방)에서 9와 4분의 3 승강장으로 들어가지 못하자 어른들에게 연락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직접 자동차를 타고 날아간다는 발상을 했던 것도 그렇다. 그래서 해리와 론은 학교에 도착한 후 맥고나걸 교수에게 크게 혼난다. 지금 보니 해리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건설적으로 혼내는 어른이 생겼다는 점이 조금 뭉클하다.
해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핵심적인 소망이 있다. 그리고 개인의 삶을 잘 살펴본다면, 그 소망을 갖게 된 이유도 저마다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 리뷰를 마무리하면서 이 글을 작성하는 현재 나의 작은 소망을 적어보고 싶다. 나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대인관계에서 자신이 자주 보이는 행동 패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건 어떤 소망에서 비롯된 행동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으면 좋겠다. 이 길고도 사소한 글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