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땃하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나는 어릴 때 사회가 참 무서웠다.
기어다니던 어린 시절, 한 살 차이, 개월수를 따지면 2살이지만 년도로 1살 차이가 나는 동생이 너무 좋아서 따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동생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있으면 어머니께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가서 아기가 운다고 이야기 하곤 했지만 밖은 너무 무서웠다.
어린이집에서도 7살인데도 4세 반에 가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역할 놀이 시간에 선생님이 역할놀이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역할 놀이를 시키셨는데 역할놀이를 못 알아들어서 가만히 있다가 강제로 옷이 갈아입혀지고 울면서 자리에 가만 앉아있기 일수였다. 친구들이 역할 놀이 소품으로 장난을 치거나 진지하게 놀이에 임하면 나는 주로 관찰 했고 관찰 후에야 소품을 받아서 어색하게 따라 했었다.
말도 느렸고 물어보는 질문이 잘 이해가지 않아서 빤히 쳐다보거나 상대가 다그치면 울기 일수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입학식 날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 사정으로 문앞에서 헤어지고 혼자서 학교 안을 들어가는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가만히 서서 모두가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았더랬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일이 너무 많아서 덕분에 내 학교 생활은 익사이팅하고 우울했다.
집에 오면 일하시는 어머니를 기다리면서 동그랗게 굴러가는 시계 바늘을 지켜보기만 했다.
시간은 늦게 볼 줄 알았는데 그 당시 작은 침이 6에 가면 발을 동동 구르며 엄마가 곧 온다고 분침이 넘어갈 때마다 초조해 했다.
엄마가 오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엄마는 문을 열고 들어가서 닫으면 항상 사라지는 존재였기 때문에 당시에 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껌딱지처럼 졸졸 따라다녔고 화장실이라도 가시면 '엄마 거기 있어?'하고 물어보곤 했다. 나오실 때까지 문 앞에 쪼그리고 있는 것은 덤이었다.
아무튼 내 어린 시절은 무서운 것들 투성이 였는데 가끔 따뜻해질 때가 있었다.
아직도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기억하는 그 기억은 엄마가 집에 하루종일 있는 드문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밥 먹고 TV로 어린이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보고 엄마가 만든 미숫가루를 먹고 엄마가 가져온 과학 실험 도구로 과학 실험을 하고 엄마는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어느덧 저녁이 되어서 엄마 동생 내가 나란히 누워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던 때였다.
엄마에게 귀뚜라미는 왜 우냐고 물어보니, '귀뚜라미도 너희처럼 엄마를 부르나보다.'하셨다.
나는 그 말에 입을 꾹 다물고 귀뚜라미들이 꼭 엄마랑 같이 있게 해달라고 마음 속으로 빌었다.
그렇게 스르르 잠든 날.
그 날이 내게는 그렇게 따땃했다.
따뜻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따뜻한 순간이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느꼈던 시간이었다.
따땃하다고 할 만 했다.
따땃하다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느낌도, 향기도 전부 다른 것 같다.
기억도 추억하는 이미지도 전부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따땃하다는 어디에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오늘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그 책을 읽고 마시니까 따땃하더라.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