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맛도 니맛도 아닌데, 그것도 나야.

물병의 쓸모.

by 담하dam ha

물병은 물을 담아가지고 다닐 수 있는 편리한 도구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확정짓지는 못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없다.

찬 물이든 따뜻한 물이든 우리는 원한다면 원하는 데움 정도의 물을 담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물만이 아니라 액체로된 것은 무엇이든 담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물을 담으면 물병, 국을 담으면 국통이 되는데.

사람도 똑같은 것 같다.

좋은 것을 담으면 좋은 사람, 나쁜 것을 담으면 나쁜 사람.

그 사람 자체를 그렇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한 장면에서만 이라고 한정했을 때, 그런 것 같다.

좋은 것이 들어가면 좋은 것이 나오고 나쁜 것이 들어가면 나쁜 것이 나온다.

물론, 아무리 나쁜 것을 넣어도 좋은 것이 나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단편적으로 봤을 때 나쁜 것이 나오는 사람들은 나쁜 것이 들어가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얼마나 나쁜 것이 많이 들어있길래. 아웃풋이 그럴 수가 있을까. 놀랄만한.

반대로 그런 사람들도 있다.

얼마나 좋은 것이 많이 들어있길래. 아웃풋이 그럴 수가 있을까. 깜짝 놀랄만한.

나는 성선설을 믿지 않고, 성악설도 믿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선천적으로 뇌의 기능이나 뇌의 한 부분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소시오패스나 싸이코패스가 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태어나 자라면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인지.

단편적인 모습을 보면, 꼭 물병에 어떤 물이 들어있는 것 같이 좋은 것이 나오면 좋은 것이 든 것 같고, 나쁜 것이 나오면 나쁜 것이 든 것 같다.

좋은 것이 들었는데 나쁜 것이 나올리는 없을테니까.

그러니까.

좋은 것을 넣어서 좋은 것으로 가지고 있다가 좋은 것이 나오는 것과 나쁜 것을 넣어도 좋은 것으로 바꾸어 간직했다가 좋은 것으로 나올 수는 있어도, 좋은 것을 넣어서 좋은 것으로 간직했다가 나쁜 것이 나올 수 없고, 좋은 것으로 넣어서 가지고 있다가 나쁜 것으로 바뀌어서 나올 수 없는 것 같다.

물감 물통의 통을 보면 색이 섞이면서 구정물이 되는데, 다른 임의적인 화학 반응을 겪지 않는 한은 구정물이다.

화학반응은 외부 자극이고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까 속에서 좋은 것으로 변할 힘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것을 많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많은 좋은 것들을 보고 자라고 느끼고 나쁜 것도 좋은 것으로 바꿀줄 아는 사람인것 같다.

반대로 나쁜 것을 많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많이 나쁜 것들을 보고 자라고 느껴서 좋은 것도 나쁘게 만드는 사람인것 같다.

좋고 나쁜 것은 상당히 상대적인 것이어서.

시대별로 사회별로 개인별로 다르겠지만.

철저히 개인적인 감상에서 그러하다.

그렇게 물병이 채워진 것에 따라 쓸모가 변하듯이 사람도 채워진 것에 따라서 나쁜 일에도 좋은 일에도 쓰인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것에는 쓸모가 있다.

좋은 것에든, 나쁜 것에든.

전부 쓸모가 있다.

극에는 악역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역경과 고난을 당해야,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야 많은 사람들이 보려한다.

악역도 있고 선역도 있다.

선역도 악역도 아닌 인물도 있다.

모두 쓸모가 있다.

그런데 어디에 쓰일지는 그 사람 안에 채워진 것들로 결정된다.

사람들은 항상 선택의 기로에 있고, 그 기로에서 선택을 하는데 누군가의 강요나 압박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도 선택이다.

그러한 선택은 조금 억울할 수도 있지만 '거부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한다.

물론 거부할 수 없는 선택도 있지만 선택을 한다.

외부의 자극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선택하고.

사람 안에 있는 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선택한다.

외부의 자극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리고 그 속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서 선택이 달라지는데.

그 선택의 결과가 꼭 좋은 것은 좋은 것을, 나쁜 것은 나쁜 것을 보여주진 않지만.

선택의 행위 자체로 보여준다.

고로, 우리는 스스로의 쓰임을 결정할 수 있다.

좋게도, 나쁘게도 쓰일 수 있다.

악역도 선역도 둘 다 아닌 것도 할 수 있다.

우리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이 행동으로 보여지게 한다.

그래서 좋은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좋은 것을 가득 담고 있는 것이겠구나.

나쁜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나쁜 것을 담고 있는 것이겠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밉거나 싫지는 않다.

행동은 밉고 싫은데 그 사람 자체가 밉거나 싫지는 않다.

나쁜 것을 담아 오느라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진다.

순간적으로 치미는 화와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우와악, 일어날 때가 있지만.

측은해지기도 한다.

어떤 삶을 살았길래 쓸모가 그렇게 되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세상이 둥글둥글해진다.

물론, 불의에는 화가 나고 약속과 규칙을 지켜주지 않는 것에도 화가 난다.

그 상황과 환경에도 화가 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으로 미움을 간직하지 않게 되었다.

물병의 쓸모를 논하기 시작했을 때 즈음 부터이다.

나의 쓸모가 언제나 선역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타인의 쓸모도 악역일 수밖에 없음도 안다.

그렇게 보면 잊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사회의 질서나 규칙이나 법규는 지키며 살지 않는 사람에게는 화가난다.

모르고서 저지르는 일은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지만.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당연히 지켜야할 것들을 어겨서는 안된다.

그것은 논외로, 모두에게는 쓸모가 있으니 당장은 타인의 쓸모가 악역이어도 다음에는 선역일지 모른다.

나의 쓸모가 당장은 선역이어도 다음에는 악역일지도 모르고, 나쁜 것이 나온다는 것은 나쁜 것을 겪었다는 것이니, 겪지 않아도 나쁜 것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니 나쁜 쓸모를 본다면 안타까이 여긴다.

나는 그런 안타까운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안타까이 여긴다.

그럼, 세상이 조금은 덜 나쁘게 보이는데.

그럼, 세상이 조금은 더 살만해 보이는데.

그럼, 미운 마음이 사라져서 조금 편해지는데.

이것을 누군가는 꼭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나와 같은 마음인 사람이 또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에 미움이 조금은 덜 할까.

물론, 나와 같은 생각이라고 해도, 나도, 미움을 덜하게 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똑같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가졌지만.

그래도.

조금은 덜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오늘은 내가 선역의 쓸모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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