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맛도 니맛도 아닌데, 그것도 나야.

털 있는 동물이 좋아. 없어도 좋아.

by 담하dam ha

나는 동물을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면, 털이 있는 동물은 전부 좋아해서 어릴 때 호랑이 우리 가까이 가서 팔을 넣어 볼 정도였고, 21살이란 어린 나이에 <채식주의자들이 채식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미니 다큐를 보고 고기를 끊었더랬다.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 많아서 고기를 더 이상 입에 댈 수조차 없었다.

그 동안 고기를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일상에서 샌드위치 하나를 먹으려 해도 들어가고, 국 속에도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나라 식생활 문화상, 반드시 접하게되는 육류의 소비를 나 하나 뿐이라도 줄여서 육류 소비가 줄어들면 비인격적인 도살과 사냥 행위가 줄어드는데 0.0000000001%, 그보다 더 적을지라도 도움이 되지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첫 채식을 시작한 나는 돈도 없었고 지지자도 없어서 쌀이나 가끔 먹는 생채소류만 먹다가 빈혈에 저혈압 쇼크가 와서 알바 도중에 쓰러지고 응급처치로 살아나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페스코(생선과 달걀까지 먹는 채식 주의자)몇 년 했다가, 아무리 채식 강도를 낮추어도 영양 밸런스 맞추기가 꽤 어려운 일이라서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고기를 섭취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고기를 먹어야 할 것 같은 때는 혼자 먹어도 육류를 섭취하는 방향으로 식사 방향을 잡았는데.

다행인지 아닌지, 고기를 원래도 좋아하지는 않았어서.

그 방향이 부담스럽지도 않고 딱 좋다 싶었지만, 원래도 그랬기 때문에 결국은 <채식주의자들이 채식하는 이유> 미니 다큐를 보기 전의 식습관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나는 털이 있는 동물들을 좋아하고 없는 동물들도 좋아하는데 특히나 털이 있는 동물을 좋아한다.

인형도 보들거리는 털이 잔뜩있는 동물 인형을 더 좋아하고 뭐든 보들거리고 푹신한 것은 다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내 세상은 몽글거리고 폭신거리고 포근포근한 것들로 이루어져있는데 그렇게 꾸며진 내 방은 내 힐링포인트가 된다.

특별할 것은 없지만 보들거리고 푹신거리고 몽글거리는 것들이 있는 곳에서 뒹굴거나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뭘 하든 좋다.

우리 집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지만 그래도 좋다.

우리 집은 겨울에는 털모자에 전기장판에 이불 두 겹에 털 옷을 입고 자지 않으면 뇌혈관이 터져서 죽을 것 같은 추위를 주는 곳인데다가 여름에는 나시에 모달 반바지를 입고 선풍기를 튼 채로 바닥에 딱 붙어서 찬기를 느끼려고 애쓰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다.

내 공간이 있다는 것이 좋고, 내 몽글몽글 보들보들 푹신푹신 세상이 있는 것도 좋다.

그래서 나는 어디서든 몽글몽글 세상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한다.

가방 안에도 몽글몽글 세상을 만들고, 내 자리에도 몽글몽글 세상을 만든다.

모든 것을 몽글거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포인트를 하나씩 두는 것인데.

파우치를 보들보들 파우치를 쓴다던가, 컴퓨터 모니터 배경을 고양이 일러스트로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하나씩 포인트를 둔다.

그럼 그 포인트 하나가 나를 금방 몽글몽글 세상으로 데려가 준다.

화가나거나 기분이 안 좋았다가도 보들거리는 촉감을 느끼면 안정을 찾기도 하고 모니터의 고양이를 보고 고양이가 가득한 고양이 세상을 떠올리거나 일러스트의 고양이가 내게 인사하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기분을 좋게 하고는 한다.

어디서든 몽글 포인트가 있다면 페이스를 되찾을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몽글몽글 세상이나 몽글 포인트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세상이고 어떤 포인트일까.

나처럼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분명 나와는 다른 세상과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면 물어보고싶은 것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고 프라이버시를 지켜야하는 부분도 있을테니, 내 마음대로 조용히 발견하면.

'저것인가봐!!!' 하고는 속으로 즐거워한다.

그것을 발견하는 날이면 어쩐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역시 모두가 몽글몽글 세상이든, 사각사각 세상이든, 숑숑숑숑 세상이든 각자의 세상을 소유하고 치유도 받는구나.

그런 즐거운 날이 많지 않은 요즘은 조금 우울하지만.

그런 날이 오길 기대하고 있다.

자신의 세상을 가지고 있는 멋진 사람을 실제로 볼 수 있는 날이 또 오길.

당신도 그런 사람이길.

그러하겠지만 그래도 그러면 좋겠다.

멋진 사람이 내 글을 읽은 것일테니까.

이전 14화내맛도 니맛도 아닌데, 그것도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