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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Jun 17. 2019

나에게 아주 조금은 선택권이 있는 줄 알았는데

매일 글쓰기_이번 주 주제 : 나누다

중학교 때의 일이다. 국어 시간이었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를 배웠다. 역마살을 타고난 아들 성기와 그런 아들을 곁에 두고 싶었던 엄마 옥화. 체장수 딸 계연이랑 잘 엮어주려 했는데, 알고 보니 옥화의 배 다른 동생. 사랑하는 여자가 이모라니! 충격에 빠진 성기가 결국 엿판 들고 떠난다. 뭐 엉망진창 요약 같지만 그런 이야기다.


선생님께서는 이 소설의 결말에 대해서 물으시며, 운명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하셨다. 어떤 아이는 운명은 정해져 있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고, 어떤 아이는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운명은 사다리 타기 같은 것이라고 했다.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지만 내가 고른 것을 타고 가는 것이라고. 제 깐에는 정해져 있는 것 같긴 한데 아무 권한이 없긴 싫었나 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운명은 미로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내 길이 있긴 한 것 같은데 도통 이 길이 맞는 건지 모르겠어서. 나는 미로 한복판에 서 있었다. 때로는 막다른 골목에 주저앉으며.


요즘에는 운명이고 자시고 그런 건 모르겠고, 강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만 같다. 어떤 때에는 너무 잔잔한 물길 위에 떠 있었다. 남들은 다 흘러가는 것 같은데 나만 고요히 멈춰 있는 기분.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면 팔이 떨어져라 휘저어야 하는 그런 상태로 둥둥.


또 어떤 때에는 거센 물살 때문에 우와아아악 하고 휩쓸려 갔다. 잠시 멈춰서 어느 길로 갈지 고민도 해보고 싶은데 그런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아냐, 이 길로는 가고 싶지 않다고! 외쳐 봐야 꼬르륵 물만 먹지. 


나에게 조금은, 아주 조금은 선택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잘 모르겠다. 그저 오늘도 둥둥 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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