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해 Jun 23. 2019

제 각각이던 마음들을 다 섞어버린 걸까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나누다

6월 말까지 사용해야 하는 영화 티켓이 있었다. 1월 1일부터 사용할 수 있었는데 ‘다음에 예매할 때 쓰지 뭐. 돈이 궁한데 영화 보고 싶을 때 써야지.’ 그러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유효기간 코앞이 되었다. 보고 싶은 영화는 딱히 없었지만 아빠와 극장으로 나섰다. 극장 근처로 이사 온 덕에 엄마 아빠와 함께 영화 보는 날도 늘었다. 슬렁슬렁 걸어가면 나오는 극장이니. 예전에는 집에서 쉬는 것이 백배 천배 낫다던 아빠마저 영화 마니아가 되었다.


“으흠. 극장 냄새. 아빠는 이 냄새가 참 좋더라.”

“극장 냄새가 아니라 팝콘 냄새지. 살찌는 냄새. 건강에 나쁜 냄새. 아빠 배 나오는 냄새야.”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아빠 배를 보고 잔소리를 한참 했지만 자연스럽게 매점 앞 키오스크에 섰다. 달콤한 맛을 먹을까. 아니, 너무 달아. 어니언 맛을 먹을까. 이것만 먹으면 좀 짜던데. 고소한 맛으로 먹자. 고소한 맛 팝콘을 선택했다가 다시 취소. 고소한 맛만 먹으면 심심하니 반반 팝콘으로 먹자. 고소한 맛과 어니언 맛을 골랐다. 음료는 콜라 대신 아메리카노. 아빠는 따뜻한 거, 나는 차가운 거.


팝콘에는 두 맛을 구분할 수 있도록 종이 칸막이 하나가 끼워져 있다. 칸막이를 사이로 두 맛이 나눠져 있다. 영화를 기다리며 고소한 맛 한 번, 어니언 맛 한 번 집어 먹었다. 멍하니 먹다 보니 입장 전부터 한 움큼 파여 있었다. 분명 팝콘 통 넘치도록 받아온 것이었을 텐데.


입장하고 나니 어느새 팝콘 통 반이 사라져 있다. 이쯤 되면 칸막이가 슬슬 걸리적거린다. 손을 넣기도 불편하고 집어 먹기는 더 불편하고. 어차피 이거 한 번, 저거 한 번... 내 손에 묻은 어니언 가루 때문에 이 맛도 저 맛도 어니언 맛 같은데 칸막이가 무슨 소용이야. 빼 버리자!


칸막이가 사라진 팝콘 통을 한 번 들썩였더니 어느 쪽이 어느 맛이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깜깜한 상영관 속에서는 더더욱 알 수가 없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고소한 맛에도 온통 어니언 가루 투성이가 되었겠지.


요즘 내 마음도 그런 것 같다. 이럴 땐 이런 마음, 저런 땐 저런 마음.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도록 나눠둔 칸막이 같은 것이 있던 것 같은데. 누가 내 마음 다 갉아먹고 칸막이를 빼 버린 걸까. 몇 알 안 남은 내 마음을 한 번 들썩여 제 각각이던 마음들을 다 섞어버린 걸까.


하루는 이런 회사 당장 때려치워! 하다가도 또 하루는 이만한 회사는 없지 하고. 하루는 이 일은 내 일이 아닌가 봐 하다가도 또 하루는 그래도 이 일이 참 좋은데 하고... 한 번 휘익 섞이니 온통 짠맛만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처럼 한가한 토요일 저녁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