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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Jun 29. 2019

아빠도 시작은 어려웠던 것일까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시작

아빠와 야구장에 다녀왔다. 처음 야구 보러 가자고 이야기할 때만 해도 이런 날을 떠올리지 못했다. 야구장에 가게 된 건 경기장 근처로 이사 온 것이 계기였다. 야구 경기장에서 쏘아 올린 폭죽이 집에서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오빠가 이렇게 가까이 야구장이 있으니 한 번은 가야 하지 않냐고 입장권을 사 왔다. 그때 아빠는 “야구는 무슨, 야구냐.” 하셨다.


TV로도 야구를 즐겨 보지 않는 우리 집이었으니까. 오빠가 입장권을 사 오지 않았다면 가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아빠도 이제는 익숙하게 야구장으로 향한다. 여전히 야구는 중계도 잘 보지 않는 우리 집이지만 야구장 투어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영화 보러 다니는 것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몇 년 전, 유난히 여름이 더웠을 때다. 나는 백수라 집에 있었고 엄마는 통원 치료로 집에 있었다. 그 찜통 속에, 있어야 할 에어컨은 집에 없었다. 엄마랑 나는 가장 더운 시간을 피해 극장으로 향했다. 점심 먹고 한두 시쯤 영화를 보면 네 시쯤 카페 한 번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랑도 함께하려고 했지만 아빠는 그때도, “영화는 무슨, 영화냐.” 했다.


하루는 (평소처럼) 엄마랑만 극장으로 가려고 하는데 안방에 계시던 아빠가 대뜸, “오늘은 뭐 보러 갈 거냐?” 하셨다. 그게 시작이었다. 지금은 극장 나들이가 월례행사가 되었다. 이 영화 재밌을 것 같더라. 먼저 이야기하시는 일도 생겼다.


생각해 보니 비슷한 상황으로 현재 진행 중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여행. 아직 영화나 야구처럼 X례행사 정도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몇 달 전, 엄마아빠 환갑 기념으로 다낭에 여행을 보내 드리려 했다. 엄마는 고향 친구들과 환갑 여행을 떠나겠다고 여권을 갱신했는데 아빠는 여전히 만료 상태였다. 여행 보내 드릴 테니 여권 좀 갱신해 오시라고 여러 번 잔소리했지만 아빠의 반응은 똑같았다. “다낭은 무슨...” 끝내 아빠의 고집을 꺾지 못했고 국내 여행으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 아니, 마무리 짓나 했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온 아빠가 갑자기 여권을 갱신해 오셨다.


“아빠 여권 갱신해 왔다. 이제 해외여행 가는 거냐? 다낭?”


다낭에 보내 드리려고 모은 돈은 국내 여행으로 이미 다 쓴 상태였다. 나는 황당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아빠한테 또 한 바가지 잔소리를 쏟아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여권 갱신해 왔으면 되지 않았냐. 다낭 다녀올 돈으로 국내 여행 갔는데 무슨 해외냐. 심지어 다낭 예상 경비보다 돈 더 쓴 거 모르냐.


아쉽게도 아직 갱신한 여권을 사용하진 못했다(곧 사용할 예정이지만). 그래도 두어 달에 한 번쯤 여행을 핑계 삼아 근교라도 다녀오게 되었다.  


아빠는 여전히 내가 무언가 하자고 하면 “~는 무슨...”이라는 말부터 꺼내신다. 그 말이 무뚝뚝한 아빠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신나게 야구 보시는 아빠를 보니, 아빠도 시작은 어려웠던 것일까 싶다. 아빠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머뭇거리셨나. 아빠는 슈퍼히어로 슈퍼맨이거나 뭐든지 척척 만들어내는 맥가이버인 줄 알았는데. 때로는 아빠도 나처럼 시작이 어려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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