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해 Jul 09. 2019

내 기쁨이 탄로 났나?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기쁨

퇴근길. 이미 만원인 지하철 문이 열린다. 내리는 사람은 서너 명. 타는 사람은 나 포함 일고여덟 명. 더 타려고 미는 사람 두어 명. 한껏 움츠리고 구겨 넣고서야 겨우 문이 닫힌다. 머리 위로 에어컨 바람이 부우우 하고 지나간다. 찰나에만 시원할 뿐, 옆 사람, 앞사람 체온에 지하철은 후끈하다.


손을 들어 핸드폰을 볼 수도 없고, 가방 안에 책을 꺼낼 수도 없고.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로 열차는 달린다. 차창 밖 풍경을 보며 ‘그래도 겨우 탔네. 휴.’ 다음 열차는 더 지옥이니까. 역마다 사람이 오르내리고 “다음 열차를 이용하세요.” 열심히 방송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다들 안다. 다음 열차는 더 지옥이니까.


20여 분 달리고 나서야 사람이 많이 준다. 이제 겨우 접혔던 어깨를 펴본다. 목도 조금 돌려보고. 이제 좀 사람 서 있는 것 같다. 책을 꺼낼까 핸드폰을 볼까 하다가 지하철 노선도를 올려다본다. 주욱 늘어선 열차길 위에 동그라미 알알이 박혀 있다. 역을 표시하는 동그라미인데, 열리는 문 위치에 따라 어느 역에서는 위로 어느 역에서는 아래로 향해 있다. 촘촘히 박혀 있는 그 녀석들을 쳐다보다, 꼬르륵. 눈치 없이 배꼽시계가 울린다.


핫도그. 핫도그 먹고 싶다. 명랑 핫도그. 겉에 고구마가 촘촘히 박힌 녀석으로 사 먹어야지. 한 입 크게 와앙 깨물면 치즈가 주욱 늘어나는 통모짜렐라로 먹을 테야.


그렇게 생각하고는 머릿속에 이동 경로를 그려 본다.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버스 정류장 대신 핫도그 집으로 가는 거야. 포장해 가야지. 도서관에 책도 반납하고 가려 했는데 오늘 가지 말까? 반납일은 내일까지인데. 내일 다시 책 가지고 나오긴 번거로운데 어쩌지. 머릿속에서는 도서관이냐 집이냐 고민하던 차에,


“주문하시겠어요?”

“어, 엇... 네. 고구마 통모짜 세 개랑 감자 두 개 주세요.”


식구는 넷인데 다섯 개를 주문한다. 내가 하나 더 먹을 거야. 핫도그를 기다리며 버스 어플을 보니 버스 도착시간도 적당하다. 핫도그를 받아가면 딱 맞겠는걸. 핫도그를 받아 들며, “케첩 많이 주세요.” 하니, “많이는 못 드려요.” 하시며 한 주먹 집어 주신다. 그 정도면 충분히 많은데요? 속으로 생각하며 룰루랄라. 버스도 기다리지 않고 알맞게 오니, 조금 돌아가더라도 도서관에 들렀다 가지 뭐. 가벼운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나를 위한 날인가. 책 반납하고 다시 돌아온 버스 정류장에, 곧 내가 탈 버스가 온단다. 손에 든 봉지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한 입 먼저 먹어볼까? 정류장 의자 한 편에 앉는다. 핫도그 하나를 꺼내 케첩을 쭉 발라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끝이 살짝 눅눅해졌지만 아직 바삭하다. 치즈가 굳었을까 걱정했는데 날이 더워 그런지 주욱 잘도 늘어난다.


흐흠, 이 맛이야!


그 순간, 옆에 앉아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바라보신다. 핫도그로 볼 빵빵한 나는 영문 모르고 바라만 볼 뿐. 핫도그는 눈치 없이 맛만 좋다. 후아앙 와구와구.


“그게 뭐예요, 아가씨?”

“네? 명랑 핫도그요.”

“무슨 맛?”

“고구마요.”

“이천오백 원?”


맛있냐고 묻는 대신 가격을 확인하신다. 아주머니가 다시 홱 버스가 오는 쪽으로 몸을 돌려 앉는다. 저 멀리 버스가 온다. 흐흠, 이 맛이야! 분명히 속으로 말한 건데 어떻게 아셨지? 내 기쁨이 탄로 났나? 나도 모르게 콧노래라도 불렀을까? 아무렴 어때, 아주머니도 핫도그 사 가실 거 같은데 무어.


매거진의 이전글 긍정의 말을 꺼내서 긍정의 마음을 빚어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