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해 Jul 10. 2019

이제 기쁠 때도 온 힘을 다해 표현해야겠다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기쁨

“아빠는 여전히 과묵하시고?”


20여 년만에 만난 먼 친척 어른이 내게 물었다. 순간, 과묵이요? 과아아아무욱? 지금 과묵이라 하셨어요? 이런 말이 속에서 계속 맴돌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아뇨, 요즘에는 안 그러세요.”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가족 신문 만들기 숙제가 있었다. 그 신문 속에서 아빠를 무뚝뚝한 성격으로 묘사했다. 거짓 하나 없는 말이었다. 아빠는 꽤 오랜 세월을 무뚝뚝한 남자로 살았다. 물론 요즘에는 드라마 보는 엄마 옆에서 말을 걸다가 혼나기도 하신다. “아니, 자네는 왜 내가 드라마 좀 볼라믄 그리 말이 많아! 뭔 말인지 하나도 안 들리네.” 엄마한테 한소리를 들으면 입을 삐죽 내밀고 안방으로 가 버리실 때도 있다.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걸 때가 더 많지만.


무뚝뚝한 남자일 때 아빠는, 말수도 적었고 기쁜 내색하는 경우도 없었다. 아빠 생신 때 몰래 이벤트를 준비했는데 기뻐하거나 감동하는 내색 없이 “얼른 치워라.” 하셨다. 그게 너무 서운해서 울기도 하고 아빠를 향해 독기 어린 눈빛을 발사하기도 했다. 흥, 내가 이제 아빠 뭐 해주나 봐라. 그러면서.


그런 날에 엄마는 한껏 입이 나온 나를 달래며, “아빠가 부끄럼이 많아서 그래. 쑥스러워서.”라고 하셨다.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쑥스러우면 좋다, 고맙다 그런 말도 못 해? 톡 쏘아붙였다.


그 모습을, 슬프게도 내가 쏙 빼닮았다. 기쁘다고 표현하기가 쉽지가 않다. 깜짝 이벤트를 받으면 평소보다 크게 반응해 주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오히려 내가 챙겨주는 것이 속 편하다. 같은 상황에서, 방방 뛸 만큼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타고 난 성격일까? 전에는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어쩌면 아빠도 나도 기뻐하는 연습을 하지 못했던 것 아닐까. 이 기쁨 뒤에 슬픔이 찾아오면 어쩌나 지레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쁨이 아까워서. 다 써버릴까 아까워서.


슬픔을 표현하는 일은 그나마 낫다. 펑펑 울어버리면 되니까. 나는 눈물이 많다. 영화나 드라마 속 슬픈 장면에 따라 울기도 한다. 누가 울면 나도 괜히 코끝이 찡하다. 그러면 기쁨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밝게 웃는 표정을 지으면 될까? 하하하 크게 소리 내 웃으면 될까? 하늘을 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까? 어렵다.


일단 말로라도 표현해 보기로 했다. 아빠랑 데이트하고 돌아올 때면 종종 묻는다. 어땠어? 재밌었어? 즐거웠어? 기뻤어? 내가 이미 답을 정해둔 질문들에 아빠는 못 이기는 척 답하신다. 어떠긴 뭘 어때. 재밌더라. 암~ 즐겁지. 그래, 기쁘다 기뻐. 우리 딸한테 잘 보여야 또 영화도 보고 놀러도 가고 하는 거지? 그러면 나도 아빠처럼 종알종알 대답한다. 재밌었다, 즐거웠다, 기뻤다, 또 가자, 또 보자, 또 하자. 뜬금없이 박수도 쳐 보고...


아직은 밋밋한 표정으로 말만 기뻐하는 수준이지만 하루에 한 번, 한 걸음씩 그렇게 아빠도 나도 기쁨을 표현하는 연습을 한다. 슬플 때 펑펑 우는 것처럼, 이제 기쁠 때도 온 힘을 다해 표현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기쁨이 탄로 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