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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해 Aug 06. 2019

내년에는 내가 더위 사줄게

매일 글쓰기 도전 중_이번 주 주제 : 땀

“엄마, 내 더위 사.”


같은 방을 쓰는 친구 중 한 명이 엄마를 보고는 대뜸 말했다. 정월대보름이었다. 정월대보름에 더위를 팔면 그 해 여름엔 더위 먹지 않는다는 그 ‘정월대보름’이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기숙사에 있었다. 엄마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기숙사에 오셨다. 간식을 챙겨주기도 하고 필요한 물품을 챙겨주기도 하고.


더위를 사라는 친구의 말에 친구 어머님은 다정하게 웃으며, “그래 우리 딸 올해 더워서 고생하면 안 되지. 엄마가 더위 살게.” 하셨다. 물론 십여 년도 더 지난 일이라 정확한 문장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정함만은 틀리지 않을 테지.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곧 도착하실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가 방문을 열고 빼꼼, 그러자 내가, 


“엄마, 내 더위 사.” 하고 말했다. 


가져온 짐을 내려놓으며 엄마는, “너는 불 앞에서 일하는 엄마한테 더위를 팔면 어떡하니.” 하고 울상이 되었다. 순간 아차! 싶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부터 식당에서 일하셨다. 때로는 사장님으로, 때로는 주방이모로, 때로는 참모로... 한 끼 600여 명이 먹는 함바 식당부터 24시간 해장국 집, 테이블 4개가 고작인 작은 백반집까지 안 해본 식당이 없었다. 온종일 불 앞에서 요리하는 엄마는 여름이 되면 땀으로 샤워를 하셨다. 홀을 가득 채운 찬 바람도 주방까진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아, 그러네. 아냐, 사지 마, 엄마.” 내가 얼른 다시 말했지만 엄마는 내 더위를 사주려고 했다. 아니야, 엄마. 사주지 마. 나는 교실에도 기숙사에도 에어컨이 있잖아.


세월이 흐른 지금, 엄마는 이제 불 앞에서 일하시진 않는다. 그래도 에어컨 빵빵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나와 달리, 더운 주방을 오가며 일하신다. 요리하느라 불 앞에 서지 않을 뿐 여전히 더운 근무 환경이다. 나는 여름 감기를 걱정하는데 엄마는 땀에 함빡 젖어서 집으로 돌아오신다. 올해도 어김없이 더위가 엄마를 괴롭힌다. 지난 정월대보름에 엄마 더위를 사줄 걸 그랬다.


엄마, 그땐 미안. 내년에는 내가 더위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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