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오늘 퇴사했다!
시간이 흐른 뒤 오늘을 돌이켜보면 어떤 날로 기억할까. 흘러가는 많은 날 중에 하루? 내 생에 전환점이 된 하루? 손에 꼽을 정도로 특별한 날이었다고 포장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땐 그랬는데 지금 생각하니 별 거 아니었어.’ 하는 그런 날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쉼 없이 열심히 달려왔다고 말하고 싶은데. 내 나이만큼 연차가 지극하신 분을 앞에 두고 할 소리는 아닌 듯하여 입을 다물었다.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른 철없는 젊은이로 보이고 싶진 않은데. 그게 맞는 말이긴 해서 또 입을 다물었다.
왜요? 아니 왜요? 대체 왜요? 동료들이 물었다. 이유가 있던 것 같은데 없는 것도 같고. 굉장히 큰 이유가 있던 것 같은데 사소한 것도 같고. 그 물음이 메아리로 돌아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나에게 묻고 있었다. 진짜로 왜?
지인에게는, 우리 나이에는 취업이 쉽지 않으니 이직 자리 봐 두고 나가야 한다고 줄기차게 얘기했었다. 그래 놓고서 나는 이렇게 대책도 없이 훌쩍 나가겠다니. 근심 걱정 없어 보이는 내 표정에 주위에서는 이미 봐 둔 자리가 있을 거라고 했던 모양인데. 그래요? 저 좀 뽑아주실래요? 그저 웃었다.
퇴사했다.
퇴사했는데 그냥 휴가 낸 것 같다. 마지막 근무일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이 팀 저 팀 들러 퇴사 인사를 했다. 친한 분도 있고 얼굴만 아는 분도 있고 얼굴도 모르겠는 분도 있고. 한 회사를 다녔지만 서로 다른 공간에 있었으니 그렇지 뭐. 심지어 한 건물에서 오늘 처음 가본 공간도 있고. 여길 퇴사하는 날에야 들어와 보는구나.
나, 퇴사했다.
나의 앞날에 자신은 없다. 꼭 무언가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날을 열심히 사는 데 힘써왔던가. 있는 힘, 없는 힘 다 쥐어짜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텼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에서, 나는 아마도 뱁새였을 것이다. 맞다, 나 뱁새 맞다. 뭐 어때?
다리 짧아도 행복한 뱁새로 살려고, 대책도 없이 그렇게, 내 인생에 쉼표를 찍었다.
나, 오늘 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