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파리지옥의 생태

선량함은 면죄부가 아니다.

by 담해윤

너는 마치 파리지옥 같다. 입을 벌려 파리를 한 입에 집어삼킨다. 식도를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가 있다. 네 의도는 악의 없는 순수함뿐이다. 바로잡을 수 없는 네 행동이, 잡아 먹히는 것만 탓하게 만든다.


세상을 살면서 인간관계를 맺다 보면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고는 한다. 세 유형으로 살펴보면, 첫 번째는 의도가 선하고 영향력 또한 선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남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려는 선한 의도에서 시작해 실제로도 그런 결과를 낸다. 두 번째는 의도와 결과 모두 악한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먼저 말한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유형으로, 남들을 파괴하고 괴롭히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고 결국 피해를 주는 유형이다. 마지막은 의도는 선하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다. 이들은 남들에게 악의적인 의도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순수함으로 인해 타인을 더욱 힘들게 한다.


이 셋 중에 파리지옥은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마지막 유형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추측한 것이 맞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대부분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다. 여기서 의도가 선하다는 것은 남을 돕고자 하는 이타적인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다. 단지 동물이나 아기처럼 악의가 없고 순수한 모습을 띠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 이런 사람들을 인간 파리지옥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은 파리지옥처럼 나쁜 의도는 없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정말 유머러스하고 쾌활한 친구였다. 우리가 완벽히 맞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옆에 있으면 즐겁고 편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친구와의 관계에서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나는 약속이 끝나면 친구를 차로 태워다 주고, 집에 놀러 오거나 좋은 일이 있으면 식사를 대접했다. 또한 그녀의 부탁에는 항상 응해주곤 했다. 당시엔 친구로서 내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해주기만 하는 관계가 몇 년 간 지속되자 ‘이 관계는 내가 주어야만 유지되는 관계인가?’, ’혹시 이 친구는 원하지 않는데 내가 일방적으로 주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해주던 것을 줄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관계의 균형이 맞기를 바랐지만 친구는 서운한 티를 냈다. 내가 차로 데려다주지 않고 각자 집에 가자고 할 때, 친구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 그녀는 당연한 것을 얻지 못한 것처럼 아쉬움을 내보였다. 나는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관계의 균형이 맞았으면 좋겠어. 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 주고받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내가 해주는 게 네게 필요 없다면 차라리 거절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녀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엔 수긍하는 척하더니 결국 말을 바꿨다. “이렇게 계산적인 관계는 힘들어…” 자신은 현재 무직이라 돈도 없고, 자기 나름의 배려도 해줬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받은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관계는 너무 계산적인 것 같다며 자신의 마음을 토로했다.


나는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녀의 저의에는 악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말로 나만 베푸는 우리의 관계가 편하고 익숙한 상황이었고, 내가 그 말을 꺼냄으로써 바뀌어야 하는 관계의 모습이 계산적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결국 그녀의 입장에서는 본인은 자기 나름의 이유로 합리적인 행동을 한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나만 친구를 배려하지 못하는 계산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후 일련의 사건이 더 있었지만 내가 그 상황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의도는 악의적인 것이 아니었고 그 상황에서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며 반박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나를 선한 의도를 가진 자신을 지적하는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나는 항상 가해자고, 그녀는 피해자로서 존재했다.


차라리 악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잘못된 것을 인지하고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 파리지옥 유형들은 자신의 의도가 악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결과를 내든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악의적인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 심한 독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경계심을 늦추며 안심하게 만들지만, 막상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며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 파리지옥에 걸려들면 영양분을 뺏기는 동시에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빠져오기 전까진 거기에 갇혀 많은 것들을 빼앗기거나, 아님 파리지옥을 해치는 가해자로서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간 파리지옥의 생태다. 이 관계에서는 당신이 ‘가해자’나 ‘피해자’ 중 하나가 되어야 유지된다. 인간 파리지옥의 관계 구조 자체가 그 두 개의 역할 중 하나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 나와 그 친구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그 구조에서 빠져나오기를 선택했고 지금은 다른 건강한 관계 속에서 편안히 지내는 중이다. 아마 그 친구의 기억 속에 나는 평생 가해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선량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쁜 사람 말이다. 그 친구를 비롯한 인간 파리지옥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건, 선량함이 면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의 의도가 선하다고 해도 그 결과가 그렇지 못하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글을 읽으며 여러분의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당신의 주변엔 그런 사람이 있는가? 만약 당신이 인간 파리지옥의 트랩에 걸려들었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keyword
이전 04화작은 실패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