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
하얀 화면 위에 빼곡한 글자가 머릿속에 들어오지는 않고 눈앞을 둥둥 떠다닌다. 강 대리가 회의실로 떠난 지 10분이 지난 시각, 나는 회의실에서 일어날 상황을 상상하며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팀장이 강 대리에게 뭐라고 할까? 강 대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으니 한 마디 할 것 같은데… 자신의 명예를 중요시하는 편인 그는 평소에는 친절하지만 자신에게 불똥이 튈 것 같으면 과감하게 한 소리를 하는 편이었다. 특히 요새같이 회사 내부가 혼란스러운 시점에서, 팀에 잡음이 생기면 눈밖에 날게 뻔하기 때문에 팀장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강 대리는 팀장의 말에 뭐라고 반박할까. 아마 평소의 그녀라면 미꾸라지처럼 쏙 빠져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어떨까? 내가 준비해 간 자료를 보고 말문이 막힐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차분하게 설명하는 팀장, 황당한 표정의 팀장, 화를 참는 팀장, 버럭 소리 지르는 팀장.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봐도 강 대리의 마지막은 모두 같았다. 잘못한 듯 고개를 숙이며 아무 말도 못 하는 모습 말이다.
그러니까 평소에 잘했어야지. 인과응보라는 사자성어가 있듯이, 누군가를 괴롭히고 시기하면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온다. 나는 강 대리가 날린 부메랑이 최대한 빨리 돌아가도록 바람의 방향을 약간만 조정했을 뿐이다. 부메랑이 더 멀리 날아가면 나 말고도 더 많은 사람들이 다칠 것이기에 말이다.
30분 후, 사무실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누군가 들어온다. 아까 팀장의 호출을 받고 나간 강 대리였다. 괜히 머릿속을 들킨 사람처럼 지레 놀라 헛기침을 하고 등받이에 등을 붙여 바로 앉았다. 그리고는 눈길질로 슬쩍 자리에 오는 강 대리를 살펴봤다. 나갈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세수라도 했는지 잔머리는 얼굴에 붙어 내려와 있고, 눈시울은 붉었다. 그리고 목이 잠겼는지 헛기침을 내며 가다듬고는 자리에 앉아 키보드 두드렸다. 한동안 마우스 휠을 올렸다 내리는 소리와 의미 없는 마우스 클릭음이 지속됐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결국 팀장에게 엄청 깨진 게 틀림없었다. 누가 봐도 이 상황은 강 대리가 잘못한 게 분명했으니까. 평소와는 다른 그녀의 약한 모습을 본 것 같아 약간의 연민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고개를 저으며 재빨리 지워내고 통쾌함과 기대감을 앞세웠다. 이제는 아이디어도, 내 삶의 통제권도 원래의 주인을 찾아서 돌아온 것만 같았다.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처럼 미뤄뒀던 상황을 처리해야겠다는 마음이 불쑥 들었다. 학창 시절처럼 모든 게 제자리를 찾는 상황을 최대한으로 앞당기고 싶었다.
모니터 아래 있는 휴대폰을 들어 10이라는 숫자와 빨간 알림이 떠있는 채팅방에 들어갔다. 읽지 않은 채팅을 지나쳐 망설임 없이 메시지를 보내고는 휴대폰을 책상 위에 뒤집어 놓았다.
[주말에 시간 되면 잠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