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불운한 사람 7화

면담

by 담해윤






“수미 씨, 들어와요.”



증거를 수집하고 난 후, 모든 일이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팀장에게 개인 면담을 신청하고 다음 날 바로 면담 일정이 잡혔고, 나는 어떻게 이 상황을 순도 100%의 사실만으로 설명해야 할지 수십 번, 수백 번을 시뮬레이션하다 보니 어느새 그 시간이 되었다. 결전의 순간 말이다.




무거운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니 반대편 창문에 쳐진 블라인드와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햇빛이 보였다. 환기를 한지 오래된 건지, 아니면 빛에 반사되어 그런 건지, 공기 중을 떠다니는 먼지가 평소보다 더 많아 보이는 듯했다. 괜히 건강에 안 좋을까 크게 들이마시려던 숨을 적당히 삼키고 괜히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수미 씨가 웬일로 면담 신청을 다했어? 무슨 일 있었나?”




의외라는 듯한 팀장의 말에 마음속 깊이 눌러두었던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동안 여러 일이 있었지만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건…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제일 친했던 친구의 소개로 들어온 직장, 그리고 내 상사는 그 친구의 친한 선배. 적당히 굴러가고 있는 팀. 내가 말을 잘못 꺼내면 그 파편이 튀어 도미노의 한 조각을,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을 쓰러뜨릴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망치더라도 구해야 하는 한 사람이 있기에, 용기를 낸 것이다.




“음… 사실 오늘은 다름이 아니라 강 대리 님이 진행하시는 프로젝트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육아용품 플랫폼 관련 프로젝트 말하는 건가? 계속 말해 봐요.”




“우선 이거 보여드리면서 설명을 드리고 싶은데요, 사실 그 아이디어 강 대리 님 게 아니라 제가 제안한 아이디어였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 강 대리 님이 저한테 아무런 말씀 없이 그 아이디어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시는 걸 목격했어요.”




나는 파일에 담긴 증거 자료들을 꺼내 펼쳐놓기 시작했다. 팀장을 기준으로 가장 오른쪽에는 내가 아이디어의 주인이라는 증거, 왼쪽에는 강 대리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동일한 아이디어의 프로젝트 자료를 내려놓았다. 팀장은 안경을 고쳐 쓰더니 강 대리의 프로젝트 자료를 먼저 들었다. 이후에는 내 자료를 펼쳐 강 대리의 자료 옆에 두고 하나하나 대조하며 종이를 넘겼다. 그런 팀장의 모습을 보며 그의 속마음이 궁금해졌다. 이 자료를 보고 팀장은 무슨 느낌을 받았을까? 강 대리에 대한 배신감이나 실망감으로 차오르지는 않았을까?




종이가 넘겨지며 펄럭였다. 한 번, 두 번, 열 번. 그리고 종이를 탁하고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내 무릎을 보던 시선을 돌려 팀장을 바라봤다. 처음 회의실에 들어와서 마주했던 온화로운 팀장의 표정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눈썹이 묘하게 올라가 있는 얼굴. 누가 봐도 심기가 거슬린 표정이었다.




“일단 자료 확인은 다 했는데, 내가 정확한 상황을 알았으면 해서. 수미 씨가 겪은 상황이 뭔지 자세하게 이야기해 볼래요?”




“현재 대리님이 진행하시는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는 제가 2주 전 팀 회의 때 제안을 한 것이고요, 당시 과반수로 제 아이디어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해서 제가 담당자로 준비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강 대리님이 그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하고 계시더라고요. 저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요.”




“음… 그래요? 수미 씨가 강 대리에게 이유는 물어봤어요? 중간에 수미 씨가 바빴거나 하는 무슨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잖아.”




여전히 자료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턱을 만지던 팀장이 나에게 물었다. 역시 게는 가재 편이라 이건가. 아무래도 오래 같이 근무했던 사람이라 강 대리를 더 믿는 것 같았다. 난 함께한 지 겨우 일 년을 넘겼으니 말이다. 순간 약간의 억울함과 분노로 덜덜 떠는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았으나 목에 힘을 주고 말을 이어 나갔다.




“강 대리님께 말을 해서 해결될 문제였으면 진작 여쭤봤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직접 팀장님께 말씀을 드리는 건, 평소에도 강 대리님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탓을 자주 하는 모습을 보이셨고, 심지어 저의 부족함을 문제의 원인이라고 이야기하실 때도 있었어요.”




속에 가득 묵혀 있던 무언가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기폭제를 만난 것처럼 미친 듯이. 말은 점점 빨라지고, 이러다가는 하면 안 되는 이야기까지 나올 것 같아 스스로 그 구멍을 틀어막았다.




“… 그래서 이런 강 대리님의 태도에 이번 문제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팀장님께 직접 말씀드리러 왔습니다. “




가장 깊은 곳에 더 썩어버린 무언가가 나오기 전에 적당한 마무리를 선택했다. 스스로의 자제력에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사적인 감정보다 공적인 부분을 우선순위에 두는 모습에 말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팀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이 되었다. 괜히 밀고한 사람이 되어버릴까 순간 겁도 났다. 미간에 힘을 주며 여전히 생각에 빠진 팀장을 바라보던 그때, 팀장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일단 수미 씨가 하는 말 다 이해했어요. 우리 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정말 유감이네요. 수미 씨도 알다시피, 우리 회사가 지금 변화 과정에 있잖아요? 시대에 맞춰 글로벌하게 나아가면서 조직도, 업무도 개편 중인데, 이렇게 구시대적인 일이 생기면 정말 곤란하죠.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공을 훔쳐가거나 이런… 물론 정확한 이야기는 강 대리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지만, 이런 일이 내 귀까지 들어왔다는 건 결국 강 대리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거니까…”




“…”




“우선 자료는 내가 가지고 있을게요. 그리고 강 대리 이야기도 들어보고 이후에 문제 어떻게 해결할지 알려줄게요. 들어가 봐요.”




“네. 알겠습니다.”




속 시원한 마무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상황을 털어놓은 것, 그리고 팀장의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소득이 있었다.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가볍게 느껴지는 회의실 문을 당기며 복도로 나섰더니 쾌적한 공기가 날 맞이한다. 공기를 가로지르며 조금 빠르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향했다.




푹신한 의자의 감촉을 느끼며 꺼져있던 모니터 화면을 켰다. 비밀번호를 치고 있을 때 옆에서 강 대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팀장님. 아뇨, 지금 괜찮습니다. 회의실로요? 네 알겠습니다.”




팀장의 전화인가 보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 대리를 보며 갑자기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기다려 온 순간인데, 막상 겁이 나는 것 같았다. 이래서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 거라고 하는 걸까? 용기를 냈지만 난 여전히 작은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심장을 부여잡고 나를 스쳐 지나간 강 대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한 올의 흘러내림도 허락하지 않는 깔끔한 포니테일에 칼 주름이 잡힌 셔츠와 슬랙스, 그리고 오른손에는 어디든 항상 챙겨가는 가죽 커버로 싸인 업무 다이어리가 있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듯한 모습으로 회의실을 가는 그녀를 보며 인간은 자신의 한 치 앞도 못 본다는 말이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모니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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