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미치광이의 탄생
와병생활을 시작했던 2023년.
1월 중순부터 시작됐던 통증은 마치 끈질긴 그림자처럼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온갖 병원을 전전하며 해결책을 찾아 헤매다 보니,
희망과 좌절의 반복 속에 상반기가 훌쩍 지나갔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면 딱 일주일,
그 짧은 시간만큼은 아픔 없이 앉아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곧 나을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에 부풀어
스트레칭도 열심히 했지만,
그 희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통증은 더 잔인하게 되돌아왔고,
나는 깊은 절망에 빠지곤 했다.
찬바람 불 때부터 봄이 올 때까지 숱한 실망을 하고 나서
나는 그대로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더 이상 기대도 실망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지독한 고통에서 나를 구해줄
세상의 구원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누워서 눈물만 또르르 흘리는 일이었다.
실컷 세상을 욕하고 나 자신을 저주하며 바닥까지 내려갔다.
그러자 역설적으로,
내 안에서 다시 살고 싶다는 외침이 들려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이 나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서 이런 일이 생겼을 거야.
내가 배울 수 있는 걸 찾자.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자.”
조금 늦었지만,
그렇게 나의 삶에도 조금 늦은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여름이 올 무렵, 일단 10분 걷기부터 시작했다.
무작정 밖으로 나가서 걷다가
통증이 시작되면 미련 없이 들어오는 것을 반복했다.
시험장 들어가기 전까지 나을 수 있다는 희망과,
나아야만 한다는 절박함으로 병에 파고들었다.
정선근 교수님 유튜브를 정주행 하며 시험공부보다 허리통증에 더 몰입했다.
걷기와 스트레칭뿐만 아니라 생활습관도 전부 고쳤다.
허리가 숙여지는 자세는 전부 피했다.
씻을 때부터 시작해서, 양말 신을 때, 바닥에 있는 물건 주울 때 등
의식적으로 허리가 숙여지는 상황을 피하려고 항상 노력했다.
그렇게 나의 노력이 마침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몸에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30분 정도는 거뜬히 걸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완전히 회복 것은 아니었기에
시험 보러 가기 전까지 주사치료도 병행했다.
시험 당일에도 진통제를 먹고,
쉬는 시간 틈틈이 일어나 스트레칭을 해주며
통증을 관리해야만 했다.
그래도 시험 끝나고 결과 발표까지 3개월 기간 동안
쉬면서 운동을 하니 삶의 질이 수직상승했다.
베란다 문 닫기도 힘들 정도의 삶이었는데,
70% 정도는 ‘사람 흉내’를 낼 수 있는 몸으로 회복했다.
그때 확신했다.
나를 구원한 것은 결국 나 자신 뿐이었다는 것을.
병원 치료도 왕복 3시간 거리에 있는 곳까지 다닐 만큼 소중하고 절실했지만,
진정한 회복의 시작은
오직 내가 내 몸을 움직였을 때 시작됐다.
나는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2024년 10월 9일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3km를 달렸다.
10분 걷기도 힘들던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절망의 끝에서 한 발 한 발 내디딘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위로이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확신의 눈물이었다.
탄력을 받은 나는 일주일 뒤 5km 달리기에 성공했다.
근력운동도 제대로 시작했다.
이제는 생존운동 말고 진짜 운동을 하고 싶었다.
근육을 키우기로 했다.
3개월 단위로 인바디를 재서 근육량이 얼마나 늘었는지 체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나는 숨쉬기운동 전문에서 진짜 운동미치광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