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대신 눈치를 배운 아이
앉아있지도 못하는 내 몸처럼,
내 마음도 이미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늘 긴장하며 살았다.
한때 나와 같이 살았던 그는,
존재만으로도 집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했다.
그의 기분이 상하면,
나와 자매들은 방 안에서 두려움에 떠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또 나는,
말하면 말해서 혼나고, 울면 울어서 혼나고,
대답 못 하면 안 한다고 혼났다.
물론 어린 시절의 나는
할 말 다하는 촌철살인 대마왕이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을 잘 찔렀을 것이다.
결국 나는 눈 밖에 난 자식이 되었다.
무슨 말을 해도 나무라던 그 앞에서,
나는 점점 말을 삼키는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조용히,
감정을 숨기는 법을 먼저 배웠다.
그렇게 잠식된 무기력은
나를 더욱 고립시켰다.
나는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역할 하나가 주어졌다.
엄마의 말벗.
주제는 보통 그에 대한 원망이었다.
엄마는, “네가 제일 의젓하고 든든해. “라고 하며
당신 가슴속에 맺힌 한을 쏟아냈다.
날뛰는 그로부터 엄마를 지켜줄 수는 없었지만,
엄마의 말을 들어주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라도 구해주지 못한 부채감을 덜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가 감당해야 할 감정을 함께 짊어지기 시작했다.
그 무게에 짓눌리게 된 나는
조용히 내 감정을 밀어냈다.
나는 점점 엄마와 동일시되어 갔다.
보호자가 필요한 아이가
보호자의 짐을 대신 들어주는 건,
슬프게도 그때 내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시간이 흘러
온전히 자라지 못한 어른이 된 나는,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상담을 다녀온 어느 주말,
청소를 하며 헤드폰을 끼고 노래를 들었다.
청소할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대청소할 때
CD를 틀어두고 청소하는 게 루틴이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그는 그걸 싫어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청소 전에 신나게 CD를 골라
음악을 재생했고, 그는 나에게 인상을 쓰며 화를 냈다.
“먼지 날리는데 그거 틀면 스피커 고장 나잖아!”
그 순간,
‘내가 스피커보다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억이 되살아나자 처음에는 짜증이 솟구쳤다.
그래도 모처럼 평온했던 나의 기분을 망치긴 싫었다.
‘모나긴 했어도 이 정도면 잘 컸어.. 그래, 잘 컸어..’
라며 스스로 달래려 애썼다.
하지만 멍하니 서 있던 그 어린 시절의 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너무 애처로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 젖은 청소기를 돌리며,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 일찍, 을의 태도를 배워버렸다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는 대신 ‘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체념했고,
내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기보다
누군가의 기분에 맞추는 법을 익혔다.
나를 지키기보다 상대를 피해 가는 법을 익힌 것이다.
그건 나를 지키는 게 아니라,
나를 잃어가는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