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회식이었다. 확실히 열 번은 갔을 고깃집에서 매일 보는 사람들과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특별할 것 없이 익숙한 저녁 식사 자리. 장소가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거의 100명이나 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고깃집이 흔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맛이나 분위기 같은 건 회식에서 그리 중요한 요소가 못된다. 나는 무릇 회식이라면 장소가 어디가 됐건 그저 빨리 먹고 빨리 집에 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맛있는 음식, 즐거운 분위기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할 때 찾는 게 맞다.
이번 회식은 사실 얼마 뒤 있을 설문 조사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조직문화 진단'이라고 불리는 설문 조사다. 조직의 문화가 어떻고, 리더가 어떻고 하는 류의 뻔한 설문 조사인데, 임원들은 아무래도 결과에 예민한 모양이다. 고기랑 술을 사주면, 안 좋게 주었을 점수를 좋게 줄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정말이라면 유치한 일이다. 하지만 여긴 회사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한 둘쯤 있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 주위 그간의 설움과 불만을 설문으로 모두 토해내겠다며 벼르는 이가 한 둘이 아니었다. 나는 회식 전 일찌감치 설문 조사를 끝내버린 참이었지만, 회식이 끝난 뒤의 설문 결과가 어떨지 궁금했다. 그렇게 최악의 결과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어떤 사람들은 오늘 먹은 술과 고기를 떠올리며 밥 값을 낸 리더에게 과연 몇 점이나 주어야 할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란 원래, 주기 전에 받은 걸 먼저 떠올리게 되는 존재니까. 그리고 또 누군가는 여러분 모두 잘하고 있다고, 우리 한 번 힘내서 이겨내자는 말이 주는 묘한 기대감을 믿으며 중간 이상의 점수를 주게 될 것이다. 도대체 무얼 이겨내야 한다는 건지 알 길 없지만, 원래 과거는 미화되고 나쁜 기억은 가장 최근의 기억으로 덮어지기 마련이니까. 그 전의 속상했던 일 들 따위, 회식 날 먹고 마시는 고기와 술이 그렇듯 결국엔 소화되어 버릴 것이다. 회식의 이유 따위 상관없게 될 것이다.
그날은 정말 평범한 회식 날이었다. 정년을 채우고 은퇴하는 선배의 인사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열심히 달려왔던 길의 끝에 서 있는 사람의 담백한 인사말이었다. 감사하다고 그랬던가, 고맙다고 그랬던가. 도대체 무엇이, 또 누구에게 감사하단 말이었을까를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마치 밥 한번 먹자는 말이 그렇듯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건넨 말은 오래 기억하지 못할 만큼 짧고 간결했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그 장면만큼은 오래도록 기억나는 것이었다. 취한 사람과 취하지 않은 사람이 섞여 있던, 그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았을 그 어수선했던 분위기. 희미했지만 강렬했고, 익숙했지만 신선했던 그 장면 때문에 나는 조금 또 생각이 많아지고 말았다.
그에게는 오늘 회식이 아마 마지막일 테다. 내가 태어난 87년에 입사했다고 했으니 딱 내 나이만큼인 33년을 일한 셈이다. 내가 살아온 날만큼의 시간이 정리되는 순간의 기분을 나는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그렇게 바라본 그의 표정은 술에 취해서였는지 어색하지 않게 밝았고, 아쉽다기보단 오히려 후련해 보였다. 그저 나이 든 남자가 지니고 있을 법한 자연스러운 얼굴이었다. 이전에 몇이나 있던, 퇴직명을 받고 도망치듯 회사를 떠난 임원들과는 분명 다른 얼굴이었다. 그가 부장이었는지 차장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임원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테이블에서 다른 선배들과 함께, 임원 진급을 하지 못했으니 직장인으로서 성공한 삶은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꼭 임원이 되지 않아도 괜찮은 인생이라는 말을 변명처럼 덧붙였다. 33년간의 직장생활을 평가할 수 있는 수단이 고작 직급뿐이라니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평범한 직장인에게 그 말고 다른 성적표가 있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퇴직하는 사람을 위해 준비된 설문조사 같은 건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회식 중 내가 앞으로의 내 모습을 떠올린 건 할 수 없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건 이제 막 출발선을 벗어나 뛰기 시작한 나의 시간과 목적지의 끝에 이르러 속도를 늦추는 그의 시간, 그 사이를 상상해보는 일이었다. 어떤 신나는 일이나 설렐만한 일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아마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계속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회사원으로 불리다가 정년퇴직을 하게 될 것이다. 직장생활이 술술 잘 풀린다면 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도 있겠다. 스트레스는 더 받겠지만, 그만큼 돈도 더 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거면 된 걸까. 나는 요즘 계속 일을 한다는 건 고마우면서도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먹고살 수 있으니 고맙고, 비슷한 삶을 계속해서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무섭다. 무겁게 일어나 열심히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삶. 한 해가 넘어갈 때, 올해는 휴일이 얼마나 있는지 또 무슨 요일인지를 가장 먼저 살펴보는 삶은 우울하고 서글프다.
벌써 나는 일한 지 7년이 되었다. 정년이 60세니까 거꾸로 계산해보면, 약 30년을 더 회사에서 일해야 하는 셈이다. 얼마 전 본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은 15년을 갇혀 있다 풀려나며, 만약 자신이 15년이나 갇혀 있을 거란 사실을 알았다면 버티기 쉬웠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잡혀 들어간 날, 제발 언제까지 갇혀 있어야 하는지 알려달라고 빌던 그였다. 기껏해야 두 달 세 달을 예상했기에, 풀려날 날을 알기만 한다면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갇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 중 몇몇 시간은 버텨내야 할 만큼 일이 힘들다. 매일은 아니지만, 때로 감옥 같다고 느끼는 순간이 얼마쯤은 있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내가 일하게 될 대략의 기간을 알게 되었으니 버티기 한결 수월해진 걸까. 하지만 나는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경주를 뛰는 일이 왠지 두렵다. 빨리 뛰어가면 끝나는 기록 경쟁이 아니라 정해진 기간, 그 아득한 시간을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발걸음도 어깨도 점점 무거워질 것이다. 같은 일을 해도 편해지기보단 버겁게 느껴질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이름 모를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후련하고 개운한 기분으로 회사원들의 목적지에 서 있는 날을 상상한다. 어떤 결과를 손에 들고 있게 될지는 상관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가올 마지막 회식 때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